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55)이 긴 사퇴 발표문을 남기고 떠났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향후 대책은 아직이라고 했다. 정운찬 KBO 총재는 뒤늦게 선 감독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사퇴 후폭풍은 일파만파다.
오지환-박해민 등 병역 미필 선수들의 대표팀 합류가 발단이 됐던 이번 사태는 큰 상처를 남겼다. 떠난 선 감독도, 그를 몰아세웠던 손혜원 국회의원도, 국감에서 '사견'을 밝혔던 정 총재도, 모두가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서'라는 말을 반복했지만 이번 일로 한국야구는 반발짝도 전진하지 못했다.
정 총재 취임 이후 약 11개월이 흘렀다. 정 총재가 언급했던 전 국민에게 '힐링'이 되는 야구, 클린 베이스볼, 프로야구 산업화 초석다지기는 눈에 띄는 진전이 없다. 대신 선 감독 사퇴라는 암초에 부딪혀 적지않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정 총재 취임 이후 리그 개선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각종 사안마다 일벌백계로 징계를 강화했고, 넥센 히어로즈 이장석 전 대표에 대한 '영구실격' 조치를 내리는 등 수차례 리그 정화 의지를 보였다. 800만 관중 돌파 등 겉으로 드러난 흥행지수도 별 이상이 없다.
하지만 정 총재가 다짐했던 KBO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 변화는 없다. 여전히 차갑다. 선 감독 사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 총재가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강조했던 '국민(팬)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불찰'은 총재가 지칭했던 선 감독과 KBO 사무국 뿐만 아니라, 총재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선 감독은 말을 아끼고 있다. 발표문에 가시 돋친 표현이 있지만, 정면으로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사퇴를 결심한 직접적인 시기는 국감 증인 직후가 아니었다. 국회의원들의 질타에 선 감독은 소신을 밝혔고,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에도 당당했다. 하지만 정 총재의 국감 증인 출석에서의 발언을 듣고는 마음이 완전히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선 감독의 한 지인은 "총재의 발언 이후 사퇴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이들이 만류했지만 자존심을 꺾지 않았다"고 했다.
선 감독은 사퇴 시기를 놓고 고민하던 중 KBO에서 한국시리즈 이후 정 총재 주재의 회동을 계획했다. KBO가 이를 선 감독에게 통보했다. 모임 이후에는 사퇴가 더욱 힘들 것이라고 판단한 선 감독은 사퇴 발표를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정 총재는 국감에서 전임감독제 반대, TV를 통한 전력분석은 선 감독의 불찰, 스타출신 감독이 아니어도 성공한 사례 등을 말했다. 사견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사견을 듣기 위해 국감장에 국회의원들이 모이고 TV 생중계가 되지 않는다.
이후 일부 야구팬들은 정 총재의 책임회피식 발언을 비판했다. 야구계에서도 실망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임 총재가 영입한 첫 국가대표 전임사령탑이지만 선 감독은 존재 이유를 부정당했다. 스포츠와 정치의 분리를 마지막까지 호소한 선 감독이지만 '집안 어른'이나 다름없는 정 총재의 발언은 달랐다. 이후 선 감독은 총재와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 장윤호 KBO 사무총장이 한 차례 만났다. 정 총재가 먼저 다가서 손을 내밀지 않은 것이 다소 아쉽다.
정 총재는 지난 1월 3일 취임식에서 미디어와 팬들이 KBO리그에 전하는 주문이라며 덧붙이는 말을 했다. '선수들, 특히 고액 연봉 선수들은 팬과의 스킨쉽을 강화하라'는 부분을 맨 앞줄에 언급했다. 소통을 강조하는 정 총재가 논란 이후 선 감독은 애써 외면한 모양새가 됐다.
KBO는 14일 오전까지만 해도 선 감독이 정 총재에게 간담회를 요청한 사실만 인지했다. 정 총재는 선 감독이 오후 2시30분 긴급 기자회견을 한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적잖이 당황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 1시 30분을 전후로 선 감독의 사퇴 뉴스까지 나오니 KBO는 '멘붕'에 빠졌다.
면담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선 감독을 말리기 위해 정 총재는 문을 막아서고, 복도까지 따라나와 만류했지만 허사였다. 그 이전에 따뜻하게 손한번 잡았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수 있다. 정책과 규약보다 사람에 해답이 있을 때가 많다. 제도는 마음과 마음이 닿아 제대로 이행될 때 빛을 발한다.
선수선발의 공정성을 바라는 마음, 그 속에서도 정치와 분리된 스포츠의 중립성을 지키고자 하는 열망, 야구계 수장은 그 구성원들을 든든하게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 다양한 팬들의 목소리를 아우르는 소통노력. 모두가 원하고 정 총재가 바라는 프로야구 산업화의 출발점이다.
<스포츠 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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