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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딸이 하는 말을 듣고 정말 놀랐습니다. 딸이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훈련을 하는데, 팀에서 사용하는 라커룸이 남녀 구분돼 있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팀에 10여 명이 속해있는데, 나이와 성별 상관없이 하나의 라커룸을 쓴다는 거에요. 특히 스케이팅복은 '타이트'하니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잖아요. 아이들끼리 이성의 몸매를 보면서 농담을 하는 일도 있다고 해서 너무 당황했습니다. 라커룸을 만들 때 남녀가 각기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지 않은 거죠. 인권은 단 하나도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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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아니었다. 기본 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빙상연맹의 관리 영역이라 잘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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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2019년 전국남녀 종별종합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현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은 "상황은 각기 다르지만, 대부분의 팀은 초중고 학생으로 이뤄져 있어요. 팀이기 때문에 하나의 라커룸을 다 같이 사용하죠. 그런데 엄연히 남녀가 있음에도 옷을 갈아입을 공간은 나뉘어져 있지 않아요. 사실 어렸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성장하면서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근에 뉴스를 통해 빙상계 성폭력 문제를 알게 됐는데, 너무 무섭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당장 바뀌는 것은 없잖아요. 그냥 '내가 더 조심해야겠다' 이런 생각만 해요"라고 푸념했다. 실제로 중학생 여자 선수와 성인 남자 선수가 하나의 라커룸을 쓰는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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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계는 최근 미투 열풍이 거세다. 공교롭게도 태릉을 찾았던 이날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성폭력 비위 근절대책 후속조치 발표가 있었다. 문체부는 국가대표 관리와 운영실태에 대해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 체육분야 성폭력 조사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참여 검토, 스포츠 윤리센터 설립, 인권관리관 배치 등을 약속했다.
한 고등학교 여자 선수는 "제가 속해있는 팀은 라커룸이 없기에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요. 하지만 라커룸이 있는 친구들도 탈의실을 찾아요. 남자 선수들과 라커룸을 같이 쓰니 옷 갈아 입을 때 불편하잖아요. 많이 좁고 불편해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선수는 "남녀가 하나의 라커룸을 사용하는거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운동했던 친구에요. 볼 것도 없고, 보여줄 것도 없어요. 저희가 원하는 것은 그저 빙상장이 하나라도 더 늘어나는 것이에요. 태릉까지 2시간 걸리는 아이들도 있어요"라며 너무 열악한 훈련 현실을 꼬집었다.
대한민국 스포츠계는 현재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급히 수습에 들어갔다. 하지만 눈앞의 문제를 치우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기본적인 인권의식과 인프라조차 갖춰져있지 않은 현실. 현재 논란이 되는 상황은 일찌감치 예고돼 있던 일이다.
이에 대해 태릉국제스케이트장 관리단체인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라커룸은 국가대표 선수를 위한 곳이다. 선수들은 선수촌에 살기 때문에 라커룸은 짐을 놓는 용도로만 활용된다. 일반 선수들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른다. 대관 등은 빙상연맹에서 관리한다"고 말했다. 확인을 위해 빙상연맹에 연락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태릉=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