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와 LG의 6강 시리즈. 관통하는 핵심 단어. '빅 라인업'이다.
마치,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는 듯, 양팀 사령탑의 지략대결이 매우 흥미롭다. 여기에는 상대의 아킬레스건을 자극하려는 '고도의 심리전'이 포함돼 있다.
언뜻 보기에는 팀이 정상적으로 쓰고 있는 전략, 전술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살벌'하다. 코트 안의 실상은 다르다. 어떤 '요소'들이 꿈틀거릴까.
▶오리온 아킬레스건을 노리는 KCC 오그먼
예상과 달랐다. KCC 스테이시 오그먼 감독의 선택은 '빅 라인업'이었다.
정규리그와는 달랐다. KCC는 시즌 초반 고전했다. 이후, 전환점을 잡았다. 끝내 4위로 6강에 올랐다. 그 핵심은 이정현과 브라운을 중심으로 하는 2대2 공격. 큰 틀은 스몰 라인업이었다.
그런데, PO에서는 하승진을 중용한다. 승부처에서 '빅 라인업'을 승부수로 던지고 있다.
여기에는 고도의 심리전이 깔려 있다. 국내 감독들 중,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에서 다른 스타일의 팀 컬러나 전략을 가져가는 사령탑은 많지 않다. 경험과 능력이 부족하고, 시즌 전 준비가 소홀하기 때문이다.
오그먼 감독은 좀 다르다. 신중하게 고려할 부분이 있다. 그의 능력에 대해 과소 평가할 필요도 없지만, 과대 평가할 필요도 없다. KCC는 외곽 수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때문에 객관적 전력에 비해 기복이 상당히 심하다.
이런 약점을 오그먼 감독은 잘 알고 있다.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라는 점도 물론 인지하고 있다. 즉, 시즌 도중 사령탑을 맡은 오그먼 감독 입장에서는 팀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다. 아무리 유능한 사령탑이라고 하더라도 팀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약점(수비)을 뜯어고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가지고 있는 전력으로 최대한 약점을 가리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용병술 밖에는 건드릴 수 있는 요소가 없다.
오그먼 감독은 이 부분을 건드렸다. '역발상'을 한다. 그 시작점이 빅 라인업이다. 타깃은 2가지다. 일단, 오리온 대릴 먼로다. 먼로의 장점. 패스 마스터. 흐름을 잘 읽는다. 노련하다. 단점은 센터 본연의 기능에 소홀하다. 직접 득점을 만들 운동능력이 부족하다. 활동력이 높지 않다.
즉, 하승진을 세우서 먼로의 수비 매치업으로 붙이면, 팀 전체적으로 마이너스보다 플러스가 더 많이 발생한다. 먼로는 가끔 3점슛을 던지지만, 오리온의 메인 공격 옵션은 아니다. 성공 여부를 떠나 먼로의 미드 레인지 점퍼나 3점포는 오히려 오리온 자체적으로 공격 밸런스가 깨질 수 있는 위험이 내포된다. 저돌적 골밑 돌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수비 폭이 좁은 하승진은 먼로를 막을 때, 외곽을 어느 정도 비워도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즉, 빅 라인업의 선택은 먼로가 가진 본연의 약점을 공략하기 위한 포석이다. 두번째, 오리온 약점은 가드진이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한호빈은 아프고, 박재현은 불안하다. 에코이언은 기복이 심하다. 빅 라인업을 기용할 때, 상대 패스워크에 의한 3점 오픈 찬스를 많이 허용한다. 아무래도 큰 선수들의 외곽 수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단, 절대적 조건은 오리온이 좋은 패스를 연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리온 입장에서는 불안한 요소다. 가드가 약하기 때문. 즉, KCC 입장에서는 빅 라인업으로 가져가면, 공격에서 먼로와 이승진을 압박할 수 있고, 수비에서 오리온의 아킬레스건을 계속 건드리는 효과가 나온다. 여기에 승부처에서 이현민까지 기용한다. 패스 능력이 좋은 이현민을 기용, 공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포석이다. 수비가 약해질 수 있지만, 오리온의 메인 옵션은 이승현 최진수 허일영 먼로. 가드진은 아니다. 실제, 1차전 전반 오리온이 크게 앞섰다가 역전패를 당한 부분, 2차전 임종일을 기용한 뒤 기세가 꺾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KCC의 선수 기용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추일승 감독의 기민한 대응, 현란한 공격전술
추일승 감독은 확실히 '명장의 반열'에 오르고 있다. 3년 전 KCC와의 챔프전에서 대부분 전문가의 예상을 깨고, 우승을 차지했다. 핵심은 당시 KCC 에이스 안드레 에밋을 집중견제한 변형 디펜스(김동욱이 새깅이면서 새깅이 아닌, 약간의 간격을 둔 디펜스를 한다. 그 뒤에는 헤인즈와 이승현이 일정 간격을 두고 헤인즈의 돌파를 견제하는 전술. 언뜻 지역방어 같아 보이지만, 사실 대인 방어의 에밋 맞춤형 변형 전술)와 공격에서 1가드-4포워드 시스템으로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스페이싱 농구였다.
확실히, 공격의 틀을 만들고 디테일한 공격 전술을 구사하는 능력은 리그 최상급의 사령탑이다. 이번 6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줬다.
1차전, KCC가 빅 라인업을 들고 나오자, 트랜지션과 패싱에 의한 고감도 3점포로 수비를 해체시켰다. 하지만, 가드진의 불안으로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단, 최진수를 이정현에게 배치한 것, 패싱 게임에 의한 간격 조절과 외곽 중심의 공격 전술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2차전, 더욱 공격 전술을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이승현이 경기 전날 연습에서 발목이 돌아갔다. 스타팅 멤버에서 제외하는 악재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강한 트랜지션과 이승현과 먼로를 중심으로 패싱 게임, 거기에 따른 3점 오픈 찬스로 공격의 활로를 뚫었다. 게다가, 결국 빅라인업을 쓰는 KCC의 약점이 될 수밖에 없는 하승진 영역의 수비 아킬레스건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에코이언과 이승현의 2대2, 먼로가 함께 만들어가는 정교한 패턴으로 하승진 사이드에 오픈 3점슛 찬스를 연거푸 만들어냈다. 미세한 위치 조정과 패턴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정교하게 아킬레스건을 건드릴 수 없었을 것이다.
뚝심있게 빅 라인업을 들고 나오는 KCC의 전략에 대해 추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먼로의 약점을 건드리려는 상대의 의도를 간파했다. 이런 딜레마가 생길 줄 알고 먼로에게 외곽슛까지 중점적으로 연습시켰다"고 하기도 했다. 즉, 오그먼 감독의 의중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단, 가드진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다. 2차전 박재현 대신 득점력이 좋은 임종일을 투입하면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실패했고, 곧바로 교체했지만 이런 테스트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즉, 상대의 매치업에 맞게 팀에 가장 적합한 패턴을 찾고, 실전에서 사용했다. 2차전이 끝난 뒤 양팀 사령탑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KCC 오그먼 감독은 "스몰 라인업은 옵션이다. 빅 라인업을 계속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오리온 추일승 감독은 "KCC를 깨기 위해서는 트랜지션밖에는 답이 없다. 1, 2차전 3점슛 성공률(1, 2차전 모두 40%가 넘었다)은 평균 정도였다고 본다. 수치는 높았지만, 3점슛 만드는 과정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이런 성공률을 시리즈 내내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상대의 아킬레스건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양팀 사령탑. '빅 라인업'을 둘러싼 양팀 사령탑의 심리전은 수가 상당히 높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