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이 선수, (선발라인업) 들어갑니다."
고글 너머 김한수 감독의 눈이 씩 웃는다.
28일 부산 사직구장. 롯데전을 앞둔 김한수 감독은 타선을 짜기에 앞서 살짝 고민이 있었다. 전날 생애 첫 만루홈런 등 2홈런 3안타 경기를 펼친 박한이 때문이었다. 당연히 선발 출전시켜야 할 절정의 타격 컨디션. 고민의 중심은 김동엽에 있었다. 주전 라인업 중 유일하게 시즌 초 타격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한 타자. 이날 경기 전까지 4경기에서 12타수1안타(0.083)를 기록중이었다.
라인업에서 제외하자니 삼성 타선의 중심을 이끌어야 할 거포의 미래가 걱정이었다. 감독은 눈 앞의 단 1경기 만을 위해 시즌을 운영하지 않는다. 긴 안목으로 시즌 전체를 조감해 이끌어간다. 현재 부진하지만 김동엽은 삼성의 올시즌 타선의 무게를 좌우할 키 플레이어다. 당장 부진하다고 바로 벤치에 앉혀놓을 수는 없다. 잠깐 벤치로 빠져서 경기를 지켜 보는 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타이밍이 썩 좋지 않았다.
전날 롯데전에 삼성은 8홈런 포함, 24안타로 대거 23득점을 올리며 대폭발 했다.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타자들의 대잔치. 김동엽은 없었다. 5회 대타 박한이로 교체되기 전까지 1삼진, 1볼넷만을 기록한 채 벤치에 앉았다. 자칫 조바심이 깊어질 수 있는 상황. 슬럼프에서 벗어날 기회를 줘야 할 타이밍이었다.
때마침 이날 아침 톱타자 박해민이 가벼운 목 통증을 호소했다. 심각하지 않지만 게임 출전하기 불편한 몸상태. 김한수 감독은 김동엽이 아닌 박해민 대신 박한이를 기용했다. 박한이가 선발 좌익수로, 김헌곤은 중견수로 이동했다.
김상수에 이어 2번타자로 출전한 박한이는 어김 없이 맹타를 휘두르며 만점 테이블세터로 활약했다. 1회 첫 타석에서 볼넷으로 찬스를 만들어 강민호의 3점 홈런 때 홈을 밟았다. 선두타자로 나선 3회 두번째 타석에서는 우전안타로 출루해 러프의 적시 2루타 때 또 한번 홈을 밟았다. 4회 무사 1루에서도 송승준의 낮은 볼을 살짝 들어올려 좌전안타를 날렸다. 불혹의 나이를 무색케 하는 센스만점의 주루플레이도 돋보였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4-7로 추격 당한 6회초, 선두 타자로 나선 박한이는 욕심내지 않고 하프 스윙으로 우익수 앞에 타구를 떨어뜨렸다. 경기 흐름을 읽어내고 경험으로 만들어낸 천금같은 출루였다. 추가득점에 계속 실패하며 위기감이 감돌던 7회초. 찬스를 깔아주던 박한이는 이번에는 해결사로 직접 나섰다. 2사 2,3루에서 호투하던 고효준의 빠른 직구를 받아쳐 2타점 중전 적시타를 날렸다. 4타수4안타 2타점, 2득점, 1볼넷의 괴물같은 활약. 전날에 이어 박한이의 시계는 여전히 거꾸로 흘렀다.
김한수 감독은 박한이의 맹활약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자 "주말 '박한이데이'에 선발 출전할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홈 개막전 둘째날인 30일 대구 두산전은 박한이가 주인공인 '바카니 데이'다. 박한이의 큰 딸 박수영 양이 시구를 하고, 그 공을 아빠 박한이가 받는다. '바카니 볼' 3300개 증정, 박한이 가면 응원전, 사인회, 박한이 루틴 맞추기 이벤트, 박한이의 모든 것 퀴즈 등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된다. 벤치에 앉아있고 싶지 않을 터. 대타 출전의 기회를 주전 굳히기로 바꿔가고 있는 최고령 선수의 매직이 삼성 벤치에 '행복한 고민'을 안기고 있다.
부산=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