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등번호 21번. '끝판왕' 오승환으로 대표되는 숫자다.
왕조 시절 21번을 단 선수가 불펜에서 몸을 풀고 '라젠카 세이브 어스'가 흘러나오면 게임은 그걸로 끝이었다. 추억의 번호를 신인 시절 달았던 유망주가 있다. 라이온즈 불펜의 떠오르는 별 최지광(21)이다.
최근 마운드를 장악하는 그의 모습은 강렬하다. 등판할 때마다 간결하게 타자들을 제압하고 들어간다. 속전속결이란 말이 딱 어울린다. 구종도 많지 않다. 직구와 슬라이더를 주로 던지고, 커브를 하나씩 섞는다. 하지만 타자들은 좀처럼 정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140㎞ 중·후반에서 형성되는 패스트볼의 공은 힘이 넘친다. 볼끝이 좋아 보이는것 보다 체감 속도가 빠르게 느껴진다.
그의 공을 받는 선배 포수 김민수는 이런 말을 한다. "어휴, 지금 지광이 볼이면 필승조죠. 일단 직구가 힘있게 들어와서 직구승부가 가능해지니까 안 맞아나가고 그러니까 더 자신감이 붙는 거 같아요. 작년보다 훅 치고 들어오는 맛이 강해졌어요. 슬라이더도 작년보다 좋아졌고요."
자신의 변화, 정작 본인은 모른다. 비로 LG전이 취소된 9일 잠실구장 덕아웃. '무엇이 달라졌냐'고 묻자 부산 사나이는 머쓱하게 웃는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지난 2년간 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잘 안됐었거든요. 다만 타자들이나 오치아이, 정현욱 코치님께서 공끝과 중심이동이 좋아졌다고 말씀해 주세요."
볼끝이 좋아진 비결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비결이요? 전혀 없어요. 그냥 세게 던져요. 아무 생각 없이 세게 던지는데 그렇게 되는거 같아요."
세상 모든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 몸도 달라졌고,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부산고를 졸업하고 2017년 2차 1라운드로 삼성에 입단한 그는 큰 기대를 모았다. 오승환의 등번호를 달았을 정도로 팀 내 시선은 남달랐다. 하지만 지난 2년은 아쉽게 흘렀다. 그리고 이제 3년차. 겨우내 그는 많이 변했다.
"마음가짐이 달라졌죠. 사실 그동안 기회를 많이 받았는데 기회를 못 잡아서, 기회가 계속 오는데 좋은 쪽으로 가고 있어 좋습니다."
구속도 늘었다. 지금은 140㎞ 후반대까지 찍힌다. "구속 욕심은 없어요. 그저 웨이트하고 러닝, 단거리 뛰다보니 자연스레 늘어난 거 같아요.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여름되면 더 올라오지 않을까 싶네요."
'전설의 21번' 오승환 선배에 대한 로망은 없을까. "어릴 때부터 많이 봤죠. 직구를 타자들이 아예 못 건드릴 정도였으니 그게 제일 부러웠죠. 다리가 내려올 때 찍는 동작도 참 힘든건데, 타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그런 부분도 부러웠고요. 21번은 구단에서 그렇게 되라고 주셨던 거겠죠. 저야 닮았다고 말해주시면 기분은 좋은데 아직 많이 멀었죠."
실제 그는 오승환의 스타일을 많이 닮았다. 직구 구위와 슬라이더 투피치로 타자와 빠르게 상대한다.
"여러가지 구종을 던지기 보다 한두가지 확실하게 해서 타자를 잡으려고 예전에 던지던 포크볼은 뒤로 미뤄두고 있어요. 오치아이 , 정현욱 코치님께서 강조하는 부분이 공격적인 피칭이에요. 배트에 공이 맞아야 땅볼이든 뜬공이든 결과가 나온다는거죠. 삼진 욕심은 없고 배트에 맞히려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마운드 위 그의 표정은 거만하리만큼 늘 당당하다. "원래 긴장 같은 건 잘 안하는 편이에요. 표정으로 드러나면 타자가 안 좋게 보니까 저만의 포커페이스 유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보만리다. 최지광은 결코 조급하지 않다. 느리더라도 단 한걸음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목표다.
"제게 좋은 기회를 주시니 보답을 해야겠죠. 부상이 없어야 풀타임을 뛸 수 있는거니까 안 아픈게 제일 큰거 같아요. 목표는 불펜투수로 자리잡는 겁니다. 보직은 욕심 없어요. 내보내주시는대로 열심히 던져야죠."
이제 막 유망주 꼬리표를 떼고 포효를 시작한 사자군단의 3년차 불펜 투수. 희미해질 뻔 했던 과거 등번호 21번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부럽기만 했던 전설의 마구같던 그 직구를 조금씩 닮아가고 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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