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형들 때문에 못살겠어요."
'월반한 막내' 이강인(18·발렌시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연은 이렇다. 이강인은 20세 대표팀(U-20)에서 중책을 맡게 됐다. 바로 DJ.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팀은 몸 풀기 훈련마다 음악을 틀어 놓는다. 경기장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DJ는 정우영(20·바이에른 뮌헨)이 했지만, 소속팀 일정상 이번 대표팀에는 합류하지 못했다. 대신 전력분석관이 음악을 선정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건의가 들어왔다. 어린 선수들의 취향을 고려해 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대표팀 '흥 3대장' 중 한 명인 이강인이 지휘봉을 잡았다. 이강인은 지난달 30일, 파주NFC(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에서 진행된 훈련에 앞서 일찌감치 그라운드에 나와 오디오를 세팅했다. 그러나 음악을 트는 이강인은 고민을 토로했다.
이강인은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요"라며 씁쓸하게 말했다. 그는 "저는 우리나라 음악도 듣고 스페인 노래도 듣고 팝송도 듣는데, 형들은 팝을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기존에 있던 음악 중에서 골라서 틀었어요. 형들 맞춰줘야 해서요. 어휴, 형들 때문에 못살겠어요"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막내의 역할은 끝이 없었다. 형들을 챙기는 것도 막내의 역할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민수(19·함부르크)다. 최민수는 독일에서 오래 생활한 만큼 우리말이 완벽하지 않다. 이강인은 "솔직히 민수 형은 말이 잘 안 통해요. 형은 독일에서 오래 지냈잖아요. (저는) 독일어를 못해서 대화를 잘 못하겠어요"라며 고민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이강인이 아니었다. '불굴의' 이강인은 훈련을 마친 뒤 최민수를 급히 찾았다. 그는 최민수에게 프리킥 연습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최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골대로 향했다. 이강인은 최민수 전세진(20·수원)과 함께 프리킥 연습을 한 뒤 그라운드를 떠났다. "휴, 민수 형이랑 대화 안 하려고 했는데, 계속 '강인!'하고 불러요." 호호 웃었다.
'형들 챙김이' 이강인이 각별히 챙기는 '형'이 또 한 명 있었다. 엄원상(20·광주)이었다. 이강인은 이날 훈련 내내 "원상이 형, 이리 오세요"라며 유독 엄원상을 챙겼다. 그는 "대표팀에 처음 왔을 때 원상이 형이랑 같은 방을 섰어요. 형이 말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일부러 더 말을 많이 시켰어요. 형이 참 착해요. 잘 챙겨주기도 하고, 장난도 잘 받아줘서 좋아요"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라운드 곳곳을 누비며 형들을 챙기던 이강인. 하지만 마지막에 챙긴 사람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이강인은 "아, 저 막내 아니에요. 우리 막내 (박)규현이 있잖아요. 어디있지?"라며 선배미를 과시했다. 그랬다. 이강인은 2001년 2월, 박규현(18·울산 현대고)은 2001년 4월생이었다. 나란히 2001년생이지만, 학년이 달랐던 것이다. 형들을 챙기던 이강인. 그는 '형'으로서 막내를 챙기며 훈련장을 떠났다.
파주=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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