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탁월한 타격 능력을 갖춘 선수를 2번 타자로 활용해 득점력을 높인다는 '강한 2번론'은 이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국민거포' 박병호(키움 히어로즈)가 2번 타자로 나설 정도다. 더 많은 타석과 공격 기회로 팀에 공헌할 수 있다는 긍정론과, 타자들이 그동안 유지해 온 사이클이 흐트러지면서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부정론은 여전히 공존하고 있다.
NC 다이노스의 '홈런 타자' 나성범은 올 시즌 2번 타자로 나서는 횟수가 부쩍 늘어나는 눈치다. 2013년 KBO리그 데뷔 이래 지난해까지 나성범은 2번 타자로 43타수 15안타(통산 3071타수966안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이미 15차례 2번 타자 역할을 맡아 11타수4안타(4볼넷)를 기록했다. 아직 유의미한 타수는 아니지만, 예년에 비해서는 좀 더 많이 2번 자리에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NC 이동욱 감독은 나성범의 2번 타순 기용을 두고 '강한 2번' 트렌드와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이 감독은 "강한 2번 활용보다는 상황에 맞게 변화를 주고 있다는 쪽으로 해석해야 할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진 설명은 좀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데이터팀 분석에 따르면 출루율이 좋은 박민우 뒤에 나성범을 붙이면 득점 확률이 증가하더라"며 "그동안 나도 생각만 하고 있었던 부분인데, 실질적인 지표를 보면서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지난달 28일 창원 한화 이글스전에서도 나성범을 2번 타순에 배치했고, 나성범은 3타수 2안타(1홈런) 3타점 2득점을 기록한 바 있다. 30일 사직 롯데전에서 나성범을 다시 3번 타순으로 복귀시켰지만, 이날 1대6으로 지면서 4연승 행진을 마감하자 다시 한번 '2번 나성범' 카드를 꺼내들기로 했다.
이 감독의 결단은 그대로 적중했다. 박민우-나성범 조합은 이날 6안타-4타점-6득점을 만들면서 9대5 승리의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박민우가 5타수 3안타 1볼넷 1타점 3득점, 나성범이 5타수 3안타(1홈런) 1볼넷 3타점 3득점을 기록했다. 동점과 역전의 순간 이들의 활약이 있었다. NC가 1-4로 뒤지고 있던 4회초 1사 1루에서 박민우가 우전 안타로 출루하자, 나성범이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스리런포를 터뜨리면서 동점을 만들었다. 4-4 동점이던 6회초에는 박민우가 선두 타자로 볼넷으로 출루한 뒤 나성범이 중전 안타로 공격 기회를 이어갔고, 크리스티안 베탄코트가 양의지의 볼넷까지 더해져 만들어진 1사 만루에서 역전 2타점을 기록하는데 공헌했다.
이 감독은 박민우-나성범 조합을 적절하게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현재 우리 팀 타선이 9명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다. 부상, 체력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며 "중심은 건드리지 않되,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조금씩 변화를 주고 활용해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전에서 NC의 승리를 만들어낸 힘은 데이터였다.
부산=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