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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예상치 못한 쾌거다. '16강도 쉽지 않다'는 세간의 시선을 온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바꾸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태어난 이른바 'Z세대(Z는 알파벳 마지막 글자로 20세기에 태어난 마지막 세대를 뜻함)'들로 구성된 정정용호는 월드컵이라는 이름 앞에서 주눅 들던 기존 세대들과는 애초에 DNA부터 다르다. 언제나 흥이 넘치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다. 그러면서도 '원팀'이라는 책임감과 승부처 앞에서의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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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요한 것은 분위기다. 심장을 뛰게 하는 노래 속에 선수들은 모두 웃으며 훈련에 임했다. 2년 전부터 자유로운 분위기 속 훈련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정정용호에 '경직'이라는 단어는 없다. 경기 전 라커룸에서도 음악이 흘러나온다. 포르투갈전 패배 후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남아공과의 2차전을 앞두고는 싸이의 '챔피언'을 틀었다. 텐션을 올려준 노래의 효과일까. 정정용호는 기분 좋은 첫 승을 챙기며 16강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선수들의 흥을 올려주는 음악 속에는 숨은 비밀이 있다. 정정용 감독은 "국제대회에 나가면 경기 전에 음악이 나온다. 선수들이 그 분위기에 익숙해져야 편안하게 경기할 수 있다. 그것을 대비해 2년 전부터 꾸준하게 훈련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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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의 별명인 '막내형'은 정정용호의 팀 분위기를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다. 탁월한 실력을 바탕으로 동료들의 신뢰를 받는 이강인은 가장 어린 나이지만, 정정용호의 리더였다. 막내라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고, 형들 역시 합리적인 의견이라면 적극적으로 따랐다. 지난 일본과의 16강전에서 화제가 된 우렁찬 애국가 제창은 이강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이강인은 "포르투갈전 때 상대 선수들이 국가를 크게 부르는 걸 봤다. 경기 전 기싸움에 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이는 정정용호의 경기 전 하나의 의식처럼 됐다.
이강인 뿐만이 아니다. 다른 선수들 모두 능숙하고 세련된 인터뷰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다. 누구를 탓하거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다. 밖으로 전하는 말 속에 책임감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정정용호를 만든 힘이었다.
세네갈과의 8강전이었다. 전반 37분 케빈 디아네에게 선제골을 내준 후였다. 주장 황태현(안산)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모였다. 고개를 숙이는 대신 대화를 주고 받으며, 자신들의 실수를 분석하고 분위기를 정리했다. 이 전 대표팀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장면이었다. 이후 한국은 거짓말처럼 살아났다. 계속된 VAR, 물고 물리는 대접전 속에서도 우리 선수들은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했고, 결국 승부를 연장까지 끌고 갔다.
이같은 장면은 승부차기에서도 이어졌다. 연장 후반 종료직전 동점골을 내주며 다잡았던 승리를 눈 앞에서 놓친 한국은 1, 2번 키커 김정민(리퍼링) 조영욱(서울)이 연이은 실축을 범했다. 누가봐도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젊은 태극전사들은 흔들리지 않았고, 기어코 역전에 성공했다. 에콰도르와의 4강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최 준의 결승골에 앞서 이강인이 보여준 놀라운 페이크는 그의 센스만이 아니라 담대함이 만든 장면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상황이 어떻든 승부처마다 보여준 선수들의 냉정하고, 차분한 모습, 그것이 Z세대 선수들이 보여준 특별한 장점이었다.
정정용호가 더욱 특별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을 '원팀'으로 넘었다는 점이다. 이강인은 승부차기를 앞둔 이광연(강원)을 붙잡고 "형 할 수 있어"를 외쳤고, 첫번째 실축 후 고개 숙인 김정민을 안아준 것은 이광연이었다. 이강인 같은 천재도 튀지 않는 곳, 누가 골을 넣어도 함께 세리머니를 펼치고, 승리 후 모두가 즐거워하는 곳이 바로 정정용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