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말자."
'정정용호'가 지난 U-20 월드컵에서 보여준 준우승 못지 않은 즐거움은 '과정'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19일 청와대 초청 만찬에서 젊은 태극전사들의 이런 모습을 특히 치하했다. U-20 대표팀 선수들은 통통 튀는 젊은이답게 월드컵 기간 내내 유쾌, 상쾌, 통쾌 등 '즐기는 축구'로 국민들을 즐겁게 했다.
고국의 안방 시청자들에게 비쳐진 발랄했던 훈련, 경기 장면 외에 유독 인상적으로 눈길을 끈 게 있다. 이른바 '애국가 떼창'이다.
월드컵 같은 국가대항전에서 킥오프 전 필수 과정으로 양국 국가의 의례를 거친다. 이번 월드컵에서 U-20 태극전사들은 애국가가 울릴 때마다 유독 우렁차게 따라 불렀다.
국가 연주 시간은 중계 카메라가 각각의 선수 얼굴을 가장 근접해 소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카메라가 근접하니 선수들의 국가 제창 목소리도 더 힘차게 들렸다. 특히 '막내형' 이강인의 애국가 제창 소리가 커서 방송 중계 해설자들은 "이강인은 애국가도 참 패기있게 부른다"며 칭찬하기도 했다.
국가대표 출신 지도자는 "애국가 연주는 단순한 국민의례를 떠나 고국을 대표해 나온 선수로서의 책임감과 결의를 다시 다지는 순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종전 선배 국가대표 선수들과 다른 모습이다. 애국가 따라부르는 소리부터 확연하게 우렁차고 결연하게 들렸다.
작년 러시아월드컵 이전까지만 해도 A대표팀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친선경기, 국제대회 때 애국가를 제대로 따라부르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가 2014년 브라질월드컵 감독을 맡을 때부터 애국가 제창이 강화됐지만 이후 한동안 흐지부지됐다.
일본, 미국을 비롯해 유럽권 등 이른바 선진국 선수들이 자국 국가를 따라부르는 소리보다 작은 때가 많았다. 대부분 립싱크하듯 입만 벙긋하거나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듯 묵상, 기도하기 일쑤였다.
'정정용호' 선수들이 이전과 달라진 데에는 대한축구협회의 꾸준한 교육과 이강인 효과가 있었다. 사실 애국가 제창을 강요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으로 비쳐질수 있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무대에 서는 국가대표는 다르다.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한 나라를 대표한 사람으로서 보여줘야 할 기본 자세가 있다.
축구협회는 국제대회 파견이 있을 때마다 선수단을 상대로 교양교육을 실시한다. 해외에서 경기 외적인 언행으로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예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성이 강한 젊은 선수들이라면 더욱 신경써야 한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선수단 교양교육을 하면서 애국가 따라 부르는 게 그리 힘든 것도 아니니 이왕이면 상대팀 선수들에게 꿀리지 않게 자신있게 불러보자고 강요가 아니라 꾸준하게 권장했다"고 말했다.
우스갯말로 "웬만하면 기도는 하지 말자. 경기 시작도 하기 전에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더라"는 주의사항도 당부했다고 한다. 종교적 신념으로 기도할 수 있지만 킥오프 전 포지션 배치 때 등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니 국가 연주 때는 피하자는 의미였단다.
대회 진행 과정에서는 '막내형' 리더십을 발휘했던 이강인이 애국가를 크게 부르자고 독려한 덕분에 선수들 애국가 제창 소리는 한층 커졌다.
과거에는 애국가를 설렁설렁 부르는 모습에 대해 항의 전화도 걸려온 적이 있었다는 게 협회의 설명이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것 같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