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지난달 28일 루마니아 강호 CFR 클루이를 합산 스코어 2대0으로 간신히 꺾고 유럽챔피언스리그(UCL) 막차에 탑승했다.
하루 뒤인 29일 UCL 조별리그 추첨식이 열린 모나코로 향했다. 포트 4에 배정돼 마지막 순서까지 기다렸다.
두근두근.
'슬라비아 프라하…그룹 F'. 체코 클럽 슬라비아가 우려했을 일이 벌어졌다. 앞서 장내를 술렁이게 했던 FC 바르셀로나(스페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 인터밀란(이탈리아)이 속한 F조의 맨 뒷좌석에 배정받은 것이다. 라이프치히(독일)를 대신해 제니트(러시아) 벤피카(포르투갈) 올랭피크 리옹(프랑스)이 속한 G조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추첨자 중 한 명이 체코의 축구영웅 페트르 체흐 현 첼시 디렉터였다. 하지만 그는 슬라비아의 지역 라이벌 스파르타 프라하 출신이어서 그런지 슬라비아에는 행운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
발표 순간, 중계 카메라가 좌석에 앉은 슬라비아 한 관계자를 비췄다. 양복 차림의 이 직원은 눈을 감고 헛웃음을 지어보였다. 슬라비아를 대표해 추첨식장을 찾은 이 관계자의 표정이 슬라비아 구단 전체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왜 하필…'.
리오넬 메시가 뛰는 바르셀로나는 현재 UEFA 클럽랭킹 2위, 도르트문트는 13위, 인터밀란은 46위다. 세 팀 모두 유럽을 제패한 역사가 있다. 최근 각 리그에서 가장 활발하게 선수를 영입하는 구단이라는 공통점도 지녔다.
당연히도 세 팀의 선수단 시장가치는 슬라비아를 크게 앞지른다. 바르셀로나는 선수단 추정 몸값이 11억 6000만 유로(한화 약 1조 5583억원), 도르트문트는 6억 4210만 유로(약 8626억원), 인터밀란은 5억 8290만 유로(약 7831억원)다.
슬라비아 선수단의 몸값은 바르셀로나 미드필더 프렌키 데 용(8500만 유로/약 1142억원) 몸값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4060만 유로/약 545억원) 유럽 13번째인 체코 리그 소속의 슬라비아의 클럽 랭킹은 73위다.
이 사실을 접한 축구팬들은 곧바로 슬라비아 트위터 등 SNS를 방문했다. 아직 UCL 시즌이 개막도 하지 않았지만, '명복을 빈다'와 같은 글로 슬라비아 선수단을 앞다퉈 위로했다.
하지만, 진드리치 트르피쇼프스키 슬라비아 감독은 "누군가는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말하겠지만, 우리는 엄연히 챔피언스리그 참가팀이다. (체코 기준)동쪽으로 가지 않고 (서유럽에 있는)도르트문트, 바르셀로나와 같은 팀을 만나게 돼 대단히 만족스럽다"고 이들과 대결을 고대했다.
수비수 블라디미르 쿠팔은 "강호들이 속한 이 조에선 승점 1점을 금처럼 여겨야 한다"면서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슬라비아 팬들은 홈구장 시노보 스타디움에서 리오넬 메시와 루이스 수아레스(바르셀로나) 마르코 로이스와 제이든 산초(도르트문트) 로멜루 루카쿠와 디에고 고딘(인터밀란) 등 스타 선수들이 누비는 진귀한 장면을 두 눈으로 지켜볼 수 있다. '죽음의 조'가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다.
◇2019~2020 유럽챔피언스리그 조편성
A조: PSG, 레알 마드리드, 클럽 브뤼헤, 갈라타사라이
B조: 바이에른 뮌헨, 토트넘, 올림피아코스, 츠르베나 즈베즈다
C조: 맨시티, 샤흐타르 도네츠크, 디나모 자그레브, 아탈란타
D조: 유벤투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바이어 레버쿠젠, 로코모티브 모스크바
E조: 리버풀, 나폴리, 잘츠부르크, 헹크
F조: 바르셀로나, 도르트문트, 인터밀란, 슬라비아 프라하
G조: 제니트, 벤피카, 리옹, 라이프치히
H조: 첼시, 아약스, 발렌시아, 릴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