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지난 몇년간 강등된 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가지 공통된 문제점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프런트였다. 구단을 운영하는 프런트가 제 몫을 하지 못했다. 구단 운영 전반의 그림을 그리고, 선수단을 지원해야 하는 프런트에서 엇박자를 내며 팀 전체가 무너졌다. 위기 진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산이 그랬고, 윗선의 입김에 갑작스럽게 코칭스태프를 바꾼 성남이 그랬다. 지난 시즌 전남 역시 프런트가 실기를 반복한 끝에 강등됐다. 올 시즌, 기업구단으로는 세번째로 강등의 불명예를 안은 제주 유나이티드(대표이사 안승희)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는 24일 홈에서 수원에 2대4로 역전패하며, 남은 경기와 상관없이 최하위를 확정지었다. 공교롭게도 평소 경기장을 자주 찾지 않는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서 당한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불과 2년 전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5년 연속 상위스플릿에 들었던 '강호' 제주는 올 시즌 내내 맥을 추지 못했다. 결국 K리그 창단 멤버였던 제주는 37년만에 2부리그로 내려 앉았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추락이었다. 일단 제주 구단의 특성을 좀 알 필요가 있다. 제주는 섬을 연고지로 한 국내 유일의 프로스포츠팀이다. 2005년 부천을 떠나 제주도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제주는 SK스포츠단 소속이지만 SK텔레콤을 모기업으로 하는 야구단 SK 와이번즈, 농구단 서울 SK와는 달리 SK에너지의 지원을 받는다. 다른 모기업,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제주는 다른 SK 스포츠단에 비해 비교적 본사의 영향력에서 자유롭다. 그만큼 구단 운영의 전권을 가진 대표이사의 권한이 크다는 이야기다.
프런트 규모가 크지 않은 제주는 대표이사, 단장, 그리고 3실장 체제로 유지돼 왔다. 적절한 권력 분할이 유지되며, 일반 사원들도 활발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제주는 박경훈 전 감독에게 군복을 입히는 등 창의적인 마케팅으로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대한민국 스포츠산업 대상'에서 국내 스포츠단 최초로 최고 영예인 대상(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 균열이 온 것은 2016년 말이었다. 제주는 당시 실적이 좋지 않았던 SK에너지의 분위기와 맞물려, 명예퇴직자를 받았고 두 명의 실장급 인사가 퇴사했다.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장석수 전 대표이사 체제하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시 SK 그룹 내 다양한 인맥을 지닌 장 대표이사는 두둑한 실탄을 마련하며 공격적인 영입을 진두지휘했고, 그 결과 2016년 6년만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 2017년 K리그 준우승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안승희 단장이 대표이사가 된 2018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 대표이사는 사무국장 제도 부활 등 직제를 개편해 프런트를 새로 꾸렸다. 안 대표이사가 중용하는 몇몇 인사가 주축이 됐다. 제주 사정에 능통한 관계자는 "이때부터 프런트와 선수단이 삐걱거린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던 조성환 감독의 재계약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며 생채기를 남겼고, 주축 선수를 보내는 대신 이렇다할 영입에도 나서지 않았다. 제주는 가까스로 6위에 올랐지만, 시즌 중반 15경기 무승에 빠지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2018시즌을 마무리한 후 올 시즌 프런트의 입김이 더욱 세졌다. 프런트는 특히 선수단 구성에 많은 관여를 했다. 사실 섬팀 제주가 K리그의 강호로 자리매김한 것은 스카우트의 힘이 컸다. 제주의 스카우팅 능력은 정평이 나 있다. 로또라고 불리는 외국인 선수를 매시즌 성공시켰고,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입도선매해 팀의 주축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이런 전문적인 스카우트팀을 배제한 채, 프런트는 새롭게 팀을 짜기 시작했다. 한 관계자는 "스카우트팀이 시즌 중 K리그를 들썩이게 한 김호남-남준재 트레이드를 나중에 들었을 정도"라고 했다.
프런트의 의중이 강하게 들어간 제주는 이도저도 아닌 팀으로 전락했다. 프런트, 스카우트팀, 감독의 생각이 섞였다. 스루패스에 능한 아길라르를 데려왔는데, 그의 패스를 받아줄 침투형 공격수가 없었고, 장신 타깃형 공격수 오사구오나를 영입했는데 크로스를 올려줄 선수들이 없었다. 여름 이적시장 동안 폭풍 영입에 나섰지만, 대부분 주전에서 밀린, 그것도 임대로 영입한 선수들이었다. 전 소속팀에 불만을 품고 온 선수들이 애정도 없는 새 팀에서 뛰지 못하니 팀 분위기는 뻔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윤빛가람과 안현범이 9월 전역했지만,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 좋은 선수들이 모였지만 시너지를 내지 못한 이유다. 물론 최윤겸 감독의 지도력 부재, 선수들의 의지 부재도 문제였지만, 애초부터 팀을 흔든 프런트의 실책이 더 컸다.
프런트의 입김이 커질수록 팀은 망가졌다. 프런트 내부 사이의 갈등도 커졌다. 몇몇 직원들은 퇴사하기도 했다. 특히 선수단과 갈등이 깊어졌다. 선수단과 프런트가 함께 클럽하우스 건물을 쓰는 제주의 특성을 감안하면 치명적인 문제였다. 한 관계자는 "스플릿 라운드 후 수뇌부와 고참 선수들 간의 미팅이 있었지만, 봉합은커녕 고성만 오갔다"고 했다. 선수단 내부에서 "이런 팀에서 뛰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수뇌부는 오히려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보여주기식 마케팅에 주력했다. 물론 제주 상권과의 협업 등 신선한 마케팅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진짜 신경쓸 것은 마케팅이 아닌 성적이었다. 심지어 제주는 강등당한 날, 팬들과 사진을 찍는 황당 팬미팅을 하기도 했다. 팬도, 선수도 웃지 못하는 정말 황당한 자리였다.
프런트의 오만 속 선수단은 결국 힘을 내지 못했다. 원팀은 선수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을 둘러싼 주변의 힘이 모일때 시너지가 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서 제주의 강등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 강등은 현실이 됐다. 부천과 생각지도 못한 더비를 펼쳐야 한다. 다시 1부에 올라오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뼈를 깎는 쇄신이 절실하다. 그 시작은 프런트의 변화가 돼야 한다. 인사가 만사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