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아!" 결의에 찬 외마디 파이팅과 함께 빠르게 깎아지르는 서브가 예리했다. 조막만한 얼굴의 당찬 소녀, 1m30의 작은 키로 쏘아올리는 혼신의 포어 드라이브는 거침이 없었다. 제 얼굴만한 라켓으로 볼의 정점을 정확히 타격할 때마다 '깡!' '깡!' 경쾌한 파열음이 났다. 웬만한 동년배 선수와는 게임도 되지 않았다. 무엇에 홀린 듯 테이블에서 좀체 눈을 뗄 수 없었다. "대한민국 여자탁구 초등부 3학년 랭킹 1위, 천안 용곡초 3학년 허예림"이라고 했다.
허예림은 14~15일 경기도 용인 삼성생명 휴먼센터에서 열린 삼성생명배 제36회 전국 초등학교 우수선수 초청 탁구대회에서 7전승으로 우승했다. 올시즌 초등학교 학년별 랭킹 1~8위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승을 다투는 대회, 허예림은 이틀간 7명을 상대로 한 리그전에서 단 1세트도 내주지 않았다. 심지어 총 21세트 중 11세트는 5실점 이하로 끝내버렸다. 압도적, 절대적, 인상적인 경기력이었다. 허예림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회장기, 교보생명컵에서 줄곧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자타공인 동급 최강 에이스다.
탁구소녀의 공격엔 시종일관 주저함이 없었다. 3구, 5구를 강력한 임팩트로 노려치는 법을 꿰뚫고 있었다. 승부구를 놓치지 않았다. 드라이브 한 방으로 승부를 결정 지었다. 승승장구에도 '절대 에이스' 소녀의 표정은 한치 흔들림이 없었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다는 듯, 모든 상대를 속수무책 돌려세웠다.
'한국 여자탁구 레전드' 현정화 대한탁구협회 부회장(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에게 허예림의 경기 영상을 보여줬다. "어린 선수들은 쉽사리 판단해선 안된다"고 말을 아끼던 현 부회장은 영상을 본 후 "어디 선수냐"라며 관심을 표했다. 짧지만 인상적인 한마디를 남겼다. "아주 야무지다. 잘 친다. 어리지만 탁구의 감을 확실히 알고 치는 선수다."
1973년 사라예보의 기적,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 신화를 썼던 한국 여자탁구는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이후 4강권에서 멀어졌다. '탁구여제' 이에리사, 현정화의 뒤를 이을 세계 챔피언의 대가 끊어진 지 오래, 세계가 두려워할 만한 에이스는 전무한 상황이다.
여자탁구의 르네상스를 위해선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 10년 후, 20년 후를 미리 내다보는 혜안과 체계화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에이스의 시작, 재능의 발견은 초등학교 때부터다. 현장의 어린 재능들을 발굴해, 최고의 기술, 최고의 지원, 다양한 경험을 통해 키워내는 시스템을 확고히 구축해야 한다. 국제탁구연맹(ITTF) 그랜드파이널 혼합복식에 최연소 15세의 나이로 초청받은 '탁구신동' 신유빈(수원 청명중)처럼 많지는 않지만 탁월한 '슈퍼 탤런트'들이 현장에 존재한다. 이 재능들에 대한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코칭과 지원 계획이 필요하다. 엷은 선수 저변만 탓할 것이 아니라 당장의 저변이라도, 눈에 띄는 선수 한둘이라도 꾸준히 키워내고 기회를 부여하고 확실하게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코치의 열정과 부모님의 투자에만 기대서는 안된다. '모두를 위한 스포츠'와 함께 '0.01% 탁구영재'의 꿈을 지원하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병행돼야 한다. 삼성생명 초등탁구 현장에서 또 한번의 희망을 봤다.
이번 대회 남자초등 3학년부에선 랭킹 1위 이현호(부천 오정)가 7전승으로 1위에 올랐다. 남자 초등 5학년부에선 U-12 국가대표, 부동의 랭킹 1위 권 혁이 역시 7전승으로 우승했다. 4학년부에선 랭킹 3위 박민규(의령 남산)가 승했다. 여자초등 4학년부에선 랭킹 10위 이다혜(서울 미성)가 '한솥밥 랭킹 1위' 이유빈(서울 미성)을 승자승으로 꺾고 깜짝 우승했다. 5학년부에선 '유남규 감독의 딸' 랭킹 1위 유예린이 6승1패로 우승했다. 용인=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삼성생명배 제36회 전국 초등학교 우수선수 초청 탁구대회 입상자]
◇남자초등 3학년부
▶1위 이현호(부천 오정) 7승
▶2위 김지후(서울 장충) 6승1패
▶3위 김지우(아산 남성) 5승2패
◇여자초등 3학년부
▶1위 허예림(천안 용곡) 7승
▶2위 김민서(논산 중앙) 5승2패
▶3위 정예서(의정부 새말) 5승2패
◇남자초등 4학년부
▶1위 박민규(의령 남산) 6승1패
▶2위 백종윤(당진 탑동) 6승1패
▶3위 김성원(부천 오정) 5승2패
◇여자초등 4학년부
▶1위 이다혜(서울 미성) 6승1패
▶2위 이유빈(서울 미성) 6승1패
▶3위 최서연(서대전) 4승3패
◇남자초등 5학년부
▶1위 권 혁(대전 동문) 7승
▶2위 박준희(당진 탑동) 5승2패
▶3위 강현성(부천 오정) 5승2패
◇여자초등 5학년부
▶1위 유예린(수원 청명) 6승1패
▶2위 정예인(의정부 새말) 5승2패
▶3위 이채윤(이정부 새말) 4승3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