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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들어,우리 스토리는 이제 시작" 벨 감독,한일전 분패후 라커룸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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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어깨 펴고 고개 들어라. 우리들의 스토리는 이제 시작이다."

콜린 벨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이 17일 오후 부산구덕운동장에서 펼쳐진 2019년 EAFF E-1챔피언십(동아시안컵) 최종 한일전에서 후반 43분 통한의 페널티킥 결승골로 0대1로 패하며 일본에 우승컵을 내준 직후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건넨 메시지다. 대회 베스트 수비상을 받은 후 스페인리그에 도전하는 장슬기(마드리드 CF 페미니노 입단 예정)도, 뼈아픈 핸드볼 실수로 페널티킥을 내준 베테랑 센터백 심서연(인천 현대제철)도, 무릎 십자인대 부상을 딛고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른 골키퍼 윤영글(경주한수원)도 이구동성 "우리들의 스토리는 이제 시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벨 감독이 부임 후 지난 2개월간 빚어낸 한국 여자축구의 변화는 인상적이다. 첫 도전인 E-1챔피언십에서 14년만의 우승 꿈은 아쉽게 놓쳤지만, 내년 도쿄올림픽 예선전을 앞두고 다음 스토리가 기대되는 희망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벨 감독이 불어넣은 긍정의 에너지

벨 감독이 여자대표팀에 불러온 가장 큰 변화는 긍정의 에너지다. 벨 감독은 어떤 분이냐는 질문에 공격수 최유리는 "제게 긍정의 힘을 심어주시는 분, 제 축구인생에서 많은 걸 다시 생각하게 해주시는 분"이라고 답했다. 부상을 딛고 돌아온 골키퍼 윤영글은 "첫 중국전 직후 '굿 스타팅어(Good startinger, 좋은 시작을 알리는 사람)'라는 감독님의 한마디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감독님을 통해 많이 배운다. 미팅을 매일 한다. 감독님 혼자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룹별로 영상을 분석해서 스스로 잘못된 점, 잘된 점을 찾아 발표하고 공유한다. 함께 공부하고 서로 격려한다. 축구 보는 눈이 높아지는 것같다"고 했다.

벨 감독은 스스로 "가슴에 칼이 꽂히는 아픔"이라고 표현한 한일전 분패 직후 라커룸에서 고개 숙인 선수들을 향해 2013~2014시즌 독일 프랑크푸르트 감독 시절 챔피언스리그 이야기를 꺼냈다. "실망한 여러분께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당시 프랑크푸르트는 2위와 무승부만 해도 우승하는 상황이었다. 후반까지 0-1로 지다 후반 41분에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다. 하지만 추가시간 종료 직전 프리킥 결승골을 내주고 말았다. 그 실수로 리그 우승은 물거품이 됐고 휘슬 후 선수들은 모두 울었다. 내 감독 인생에서 가장 슬픈 순간이었다. 그리고 12개월 후 우리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다. 똑같은 선수들이었다. 시작은 리그 우승에 실패했던 그 순간, 그날부터였다. 우리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이제 우리도 우리만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다. 어깨 펴고, 고개 들어라. 대한민국 국가대표로서 충분히 잘했다. 자신감 있게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벨 감독은 평소 벤치에선 강하게 선수들을 향해 지적하고, 상대 벤치와 신경전도 불사한다. 경기장 밖에선 선수와 스태프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고 따뜻하게 챙긴다. 개별 미팅을 통해 선수들 개인에게 강력한 동기부여를 한다. 동아시안컵 종료 후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벨 감독은 코칭스태프부터 피지컬, 영상 담당 스태프들의 노고를 일일이 거론하며 감사를 전했다. 여자축구 미디어 담당 설동철 대한축구협회 대리는 "감독님의 오랜 경력에서 우러나오는 소통과 대화는 인상적이다. 특히 패배 후 벨 감독님의 메시지는 모든 선수, 지도자들이 공유해도 좋을 만큼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벨 감독의 축구는?

벨 감독의 축구를 다 보여주기엔 충분치 못한 시간이었다. 벨 감독이 짧은 동아시안컵 훈련-실전기간에 우선 집중한 것은 수비 안정성이다. 우승하는 팀, 강한 팀의 기본은 수비라는 원칙에 충실했다. 벨 감독은 이번 대회 4-3-3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많은 활동량, 강한 체력, 빠른 역습을 요구했다.

윤영글은 "감독님이 요구하신 축구는 '많이 뛰는 축구'다. 체력과 스피드가 필수다. 미드필더들이 중앙을 지키면서 사이드 수비에도 적극 관여해야 한다. 수비를 간결하고 컴팩트하게 잘 잠그는 가운데 빠른 공격수들의 카운트어택을 요구하신다. 이 때문에 골키퍼로부터 시작되는 빌드업도 강조하신다"고 설명했다. "감독님이 오신 후 소집 기간이 짧았다. 아직 저희 스스로도 완벽하게 준비되지 못했다고 느낀다. 내년 2월 올림픽 예선에선 완벽하게 감독님 전술을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자이저 풀백' 장슬기는 "감독님은 수비 라인 앞에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을 놓고 공격적인 미드필더 3명을 세우는 제로톱 전술을 구사한다. 아직 우리도 생소하다"고 했다. 모두가 함께, 많이 뛰는 벨 감독 체제에서 선수들이 체감하는 고른 성장을 이야기했다. "수비만 해서 힘든 게 아니라 경기를 해서 힘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은 내가 공격으로 나가도 누가 백업을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공격과 수비 모두 발전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17일 준우승 직후 여자축구대표팀은 짧은 휴가에 들어갔다. 내년 1월9일경 소집해 25일 동안 발을 맞춘 후 2월9~15일 제주에서 열리는 도쿄올림픽 예선전에서 사상 첫 올림픽 티켓에 도전한다. 이금민, 지소연, 조소현 등 해외파들의 합류와 함께 수비안정성과 더불어 세밀한 공격전술에 대한 집중훈련이 이뤄질 전망이다.

벨 감독이 18일 오전 상경후 해산하는 여자축구대표팀에게 전한 연말 메시지는 '사랑'이었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내게 크리스마스는 사랑(Love)입니다. 내겐 스물다섯 살 아들이 있는데 지금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크리스마스에 집에 있는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꼭 전하길 바랍니다." 부산=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