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200경기요? 말씀해주셔서 알았네요."
'감독 200경기' 인터뷰 요청에 김도훈 울산 현대 감독(50)의 첫 반응은 이랬다. "기록은 생각하지 않는다. 한경기 한경기,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그렇게 됐다"는 설명이다.
K리그 토종 골잡이 최다골, 최다 연속골 기록을 보유한 '레전드' 김도훈 감독이 12일 펼쳐질 '하나원큐 K리그1 2020' 20라운드 대구전에서 감독 200경기를 맞는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드물게 코치 수업이 길었다. 2005년 선수 은퇴 직후 성남 일화, 강원FC 수석코치, 국가대표 전임코치를 거쳐 10년만인 2015년 인천 지휘봉을 처음 잡았다. 2시즌간 66경기를 치렀고, 2017년 울산 현대 감독으로 부임한 후 4시즌만에 200경기를 꽉 채우게 됐다. K리그 37년 역사에서 200경기 고지에 오른 28번째 감독이다.
200경기를 맞은 올 시즌, 김 감독의 울산은 19라운드까지 단 1패만을 기록중이다. 최종전까지 8경기가 남은 상황, '디펜딩챔피언' 전북을 제치고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난 6시즌간 성공과 실패, 도전과 성장을 거듭하며 꿋꿋이 살아남아, 어느새 우승권 사령탑이 된 '레전드' 감독에게 200경기의 의미를 물었다.
▶K리그 레전드 출신 감독의 200경기 '지지 않는 축구'
'감독 200경기'라는 숫자보다 눈에 띈 건 200경기의 순도였다. 선수로서 257경기-114골-41도움을 기록한 김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199경기에서 89승58무52패를 기록했다. 통산 승률 59.3%(승리=1승, 무승부=0.5승), 무패율은 73.8%다. 울산에선 지난 4시즌간 133경기에서 71승37무25패를 기록했다. 승률 67.3%, 무패율은 무려 81.2%에 달한다. 10경기 중 8경기에서 지지 않았다. 숫자로 본 김도훈 축구는 한마디로 '지지 않는 축구'다.
선수 시절부터 몸에 밴 '지고는 못사는 승부욕'은 살아 있다. 6년차 감독이 됐지만 지금도 경기에 지는 날이면 잠을 설친다. 축구철학 역시 "무조건 이기는 것"이다. "프로는 이겨야 한다. 모든 경기는 이기기 위한 과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00경기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김 감독은 "인천서 '늑대축구'를 하며 배고픔 속에 똘똘 뭉친 일, 전북을 상대로 김인성, 케빈이 골을 넣고 이긴 기억이 난다. 초보 감독 시절 '늑대축구'는 울산에 올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돌아봤다. "울산에서 좋은 기억은 현재진행형이다. 작년 우승을 놓친 마지막 경기도 당연히 기억에 남는다. 제겐 지도자로서 성장하는 과정이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진 않지만, 분명한 건 실패를 통해 한걸음씩 나아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힘든 부분을 극복할 수 있는 내공도 생겼다. 선수로 지도자로 계속 축구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뛰어난 선수가 늘 뛰어난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명제에 대해 김 감독은 "책임감"으로 에둘러 답했다. "그런 말을 듣지 않도록 나부터 책임감을 갖고 더 노력해야 한다. 더 잘해야 한다"고 했다.
'김도훈 축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김 감독은 시종일관 '팀' '다함께'를 강조했다.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다. 메시도 잘해야 하지만, 메시를 통해서 메시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다함께 성장하는 축구를 원한다"고 말했다. "때론 다른 선수들의 희생도 뒤따른다. 하지만 팀을 위한 희생, 모두가 함께 승리하기 위한 희생이다. 이 선수들이 무조건적 희생이 아니라 때로는 반짝이는 조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서로의 부족한 면을 메워주면서, 때론 개성도 드러내고 팀에 도움이 되는 퍼포먼스를 통해 다함께 성장하고 빛나길 바란다"고 했다.
▶K리그 감독 200경기, 김도훈 축구의 멘토들
지도자로서 김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은 "공감 능력"이다. 오랜 프로, 국가대표 생활, 코치 수업, 감독 경험을 통해 도출해낸 결론이다. "선수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시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느냐가 중요하다. 감독의 생각을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어떻게 구현해 내느냐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감독의 코칭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스승, 멘토를 묻자 김 감독은 가장 먼저 "2003년 전북에서 성남으로 불러주신 고 차경복 감독님"을 떠올렸다. 그해 33세의 김 감독은 28골을 몰아치며 K리그 득점왕, MVP를 휩쓸었다. "노장 선수들의 능력을 존중하고 믿어 주셨다. 그래서 우승도, 득점왕도 가능했다. 선수로서 그런 존중을 받아봤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김호곤 수원FC 단장님도 늘 힘이 돼주시는 '든든한 선생님'이다. 성남, 강원에서 함께 했던 김학범 감독님,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 차범근 감독님께도 많이 배웠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지도자다. 그분들이 보여준 열정과 준비과정을 늘 생각한다"고 했다. 김 감독은 차 감독과의 따뜻하 사제 일화도 공개했다. "지난해 우승을 놓친 후 집에만 있었는데, 차 감독님께서 연락을 주셨더라. 함께 식사하면서 '괜찮다. 열심히 잘했다. 지도자로서 다 경험'이라고 격려해주셨는데 정말 큰 힘이 됐다"며 감사를 전했다.
▶'감독들의 무덤 K리그'에서 6년간 롱런한 비결
올시즌도 K리그는 '감독들의 무덤'이다. 이임생, 최용수, 황선홍 감독이 줄줄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4년째 K리그1 리딩구단 울산을 굳건히 지키는 김 감독의 존재감이 더 특별한 이유다. K리그 감독의 '롱런 조건'을 묻는 질문에 김 감독은 "믿음의 축구, 정직한 축구"를 이야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정직하고 바르게 해야 한다. 선수, 구단과의 관계에서 서로 숨김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믿어주는 프런트와 선수들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지도자 스스로 계속 발전해야 한다. 정보와 해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프런트와 선수들의 믿음에 보답하려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독으로서 남은 목표는 오직 하나, 울산의 리그 우승이다. 김 감독은 "김광국 단장님을 비롯해 '영혼까지 끌어모아' 믿고 지원해준 울산 프런트를 위해 저 역시 '영혼까지 끌어모아' 목표를 이루고 싶다. 내가 몸 담은 이곳을 최대한 빛나게 하고 싶다. 지난 4년간 쌓인 신뢰가 성적과 비례하고 K리그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고 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15년을 기다린, 우승의 순간을 꼭 함께 이뤄내고 싶다. 함께 뛴 이 멤버가 K리그 역사에 길이 기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최근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를 감명깊게 봤다고 했다. "나는 이기기 위해 플레이한다." 무패 확률 81.2%, '레전드' 김 감독이 우승 전선에서 가슴에 깊이 새긴 조던의 명언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