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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쁜 놈" 김국환, 6개월전 작고한 하숙집 아줌마 납골당 만남('TV는')[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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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유나 기자]가수 김국환이 찾고 싶던 은인인 하숙집 아줌마를 납골당에서 만나 후회를 하며 절을 올렸다.

10일 방송한 KBS 2TV 'TV는 사랑을 싣고'에서는 '타타타'로 역중행한 가수 김국환의 인생사가 공개됐다. 또한 'TV는 사랑을 싣고'(이하 'TV는') 처음으로 찾으려는 주인공이 작고하신 결말이 전개돼 안타까움을 남겼다.

김국환이 찾고 싶던 사람은 과거 신세를 졌던 신당동 하숙집 아줌마. 김국환이 잘 나갈 때와 힘들었던 때를 모두 알고 계신 인생 산 증인이면서 김국환이 결혼할 수 있게 도와주신 은인이기도 했다.

김국환은 "1992년에 '타타타'의 인기는 서태지 신승훈과 3파전을 이룰 정도였다"며 "당시 그들을 누르고 가수 대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국환은 "그당시도 난 중년이었는데 쟁쟁한 후배들과 쌍벽을 이룰수 없었던 나이에 '타타타' 인기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며 "당시 '킬리만자로의 표범' '립스틱 짙게 바르고' 등으로 유명한 김희갑 선생님이 '타타타'를 주신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희갑 선생님과의 인연은 김국환이 대학을 실패하고 서울로 상경한 21살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김국환은 "당시 최고의 악단 김희갑 악단 보컬 오디션에서 뽑히면서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보컬로 활동을 했다"며 "그때 월급이 한국은행 부장보다 많았다"며 인생 제 1 전성기를 회상했다.

그는 "김희갑 악단에 있을때 하숙집 독실에 당당히 입성했다. 하지만 김희갑 악단을 나온 뒤 하숙비가 밀리면서 어려운 시간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아주머니는 제가 하숙비 밀려도 별말씀을 안하셨다. 거의 제 집처럼, 거의 제 어머니처럼 지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김국환은 "당시 대한민국 최고 악단에서 몇년간 노래하니까 방송국 PD분들이 직접 와서 보신적도 있다. 선생님 밑에서 7~8년 노래했다. 어느날 너무 방송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 때 레코드 회사에서 꼬드겼다. 그때부터 행복 끝 고생시작이었다. 나와서 보니 김희갑 악단의 소중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국환은 무명 15년만에 다시 김희갑 선생님을 만나 '타타타'를 받아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김희갑은 "하숙집 생활을 9년간 했는데 '김희갑 악단'을 나온뒤 하숙집비가 밀리기 시작했다. 제 인생의 산 증인인 하숙집 아주머니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34세때 결혼하면서 아주머니와 헤어졌다. '타타타' 성공하고는 바쁘다고 못찾고 안바쁠때는 또 딴 생각하느라고 못뵈었다"며 "이날 김국환은 과거 야간 업소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이어가던 힘든 시기 자신의 노래인 '타타타'가 국민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 나오면서 하루 아침에 스타덤에 올랐던 일화를 전했다. 당시 김국환은 딸로부터 자신의 노래가 TV에서 나온다는 말을 듣고, 다음 날 방송을 직접 보고 속으로 "이거 잘못하면 이러다 히트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하루에 10장도 팔리지 않던 앨범이 7~8천 장씩 팔리기 시작했고, 출연료도 기존 4~50만 원 정도에서 천만 원으로 20배 이상 뛰어올랐다고 밝혔다.

김국환의 은인인 하숙집 아줌마를 찾는 여정이 이어졌다. 하숙집 아줌마 딸이 경기도 용인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지만 김국환이 만난 사람은 하숙집 아줌마의 딸이었다.

하숙집 딸은 "김국환 오빠가 제 결혼식 축가를 불러주셨다"며 당시 사진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어머님은 6개월 전에 작고 하셨다. 지금 여기 납골당에 계시다"며 김국환을 이끌었다.

하숙집 딸은 "엄마가 계셨으면 단번에 날아오셨을텐데 너무 좋아하셨을 것"이라며 "평소에도 한번 찾아가볼까 말씀하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국환은 "내가 나쁜 놈"이라며 "아주머니에게 큰 잘못한 것 같다. 오랜만에 뵙고 절 드리겠다. 좋은데 계시라"며 바닥에 엎드려 두번의 절을 올렸다.

ly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