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친정 광주FC로 돌아온 윤보상(28)은 서른이 가까운 나이에도 선수가 '진화'할 수 있단 걸 몸소 보여주고 있다.
윤보상은 '하나원큐 K리그1 2021' 6라운드 현재, 모든 골키퍼를 통틀어 가장 많은 23개의 선방을 기록했다. 목 부상으로 결장한 전북 현대전을 제외한 5경기에서 경기당 4.6개씩 골문으로 날아오는 상대 유효슛을 쳐냈다. 놀라운 반응속도를 바탕으로 38개의 피유효슛 중 23개를 쳐내 60%가 넘는 선방률(60.53%)을 보였다. 이는 피유효슛 20개 이상을 마주한 K리그1 골키퍼 중 노동건(수원 삼성·68.18%) 송범근(전북·61.71%) 다음으로 높은 기록이다. '국대' 조현우(울산 현대)는 51.43%.
윤보상은 21일 전화 인터뷰에서 '최다 선방 기록'에 대한 얘기를 전해듣고 "정말인가? 몰랐다"며 웃었다. "그만큼 우리가 많은 슈팅(6경기 92개)을 허용했다는 말도 된다. 이 모든 게 나를 믿고 영입해준 김호영 감독님과 코치진, 내 앞에서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 덕분"이라고 했다.
올 시즌 활약의 비결과 달라진 점을 구체적으로 묻자 지난해부터 일어난 일들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윤보상은 지난해 제주에서 발등 인대 부상과 힘겨운 주전 경쟁 등으로 인해 1경기 출전에 그쳤다. 지난시즌을 마치고 거취가 결정나지 않은 시점에 경기도 모처에서 자비를 들여 한달 반 동안 합숙 특훈을 하며 '부활'을 준비했다. 지난 2월 때마침 '친정팀' 광주의 김호영 감독이 '콜'을 보냈다. 필드에 나가 골키퍼 장갑을 끼고 싶었던 윤보상은 2016년 프로 데뷔한 광주로 3년만에 돌아왔다. 광주에선 이승준 골키퍼 코치의 철저한 관리와 이 코치가 고안한 반응 훈련 덕에 개막에 맞춰 폼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윤보상은 수원 삼성과의 개막전에서 상대의 23개 슛(유효슛 10개) 중 8개를 혼자 힘으로 막았다. "1년을 쉰 선수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졌다"는 윤보상은 이후 출전한 4경기에서 4-4-4-3개의 선방을 기록했고, 팀은 윤보상이 출전한 5경기에서 6골을 내줬다. 윤보상은 강등 전력으로 평가받는 광주가 그나마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윤보상은 "서울전에서 클래스가 다른 (기)성용 선배의 슛은 못 막았지만, 오스마르의 슛을 전반에 한번, 후반에 한번 막았다. 슛이 워낙 강해서 손목이 찌릿하더라. 오스마르가 코너킥을 차러 가면서 날 보고 '헤이 왓? 왓?' 이러더라. 왜 다 막느냐는 얘기였다. 경기를 마치고는 팔로세비치와 오스마르가 다가와서 '굿 골키퍼'라고 해줬다. 고마웠다. 주변에서도 '예전에는 뭣모르고 덤비고 파워풀하기만 했는데, 올해 보니 무게감이 있고 침착하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이운재 선배님이 쓴 책에 '기다리면 승리한다'는 명언이 있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고 요즈음 느낀다. 어떤 의미에서 작년 힘든 생활에 대한 보상을 지금 받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윤보상은 광주로 돌아오기 전 씩씩한 아들도 얻었다. 아내와 아들은 인터뷰 시점 이틀 전에 제주 집을 정리하고 광주 인근 나주로 이사 왔다.
최후방을 담당하는 윤보상이 빛난다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팀이 정상적으로 안돌아간다는 얘기도 된다. 광주는 예상보다 전력이 탄탄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결과를 따내지 못하고 있다. 6라운드 현재 승점 4점으로 최하위 수원 FC(3점)를 승점 1점차로 따돌리고 가까스로 최하위는 면했다. 하지만 윤보상은 "보통 2연패를 하면 팀 분위기가 다운돼야 하는데, 이 팀은 신기하게도 그렇지 않다. 감독님의 능력인 것 같다. 지금은 경기력적인 측면에서 광주를 무시하는 팀은 한 팀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릴 강등후보로 여겼지만, 이제 판도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윤보상은 "우리 팀엔 스타 플레이어가 없다. 다들 뛰고 싶어서 온 간절한 선수들이다. 두 명의 외인 선수(헤이스와 알렉스)가 팀에 합류했는데, 실력이 굉장하다. 기대가 된다. 광주 FC의 축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윤보상의 활약도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