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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허재는 전설의 시작이었던 용산 중, 고등학교 시절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농구부 동기 4인방 중 한 명인 이삼성을 찾아 나섰다. 허재는 "고등학교 때까지 6년이란 세월을 같이지냈다. 중3때나 고3때나 우승을 같이 다 했다"고 농구부 동기 4인방을 추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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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업 리그 라이벌팀에서 경기를 뛰었던 이삼성은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소문도 없이 자취를 감춰 허재와 연락이 끊긴 것은 물론 당시 소속팀의 감독과 선수들도 영문을 몰라 당황했었다고. 특히 4인방 중 한 친구를 먼저 떠나보낸 허재는 세월이 흘러갈수록 이삼성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뭘 하고 지내는지 궁금해진다며 제작진에게 추적을 의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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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용산고 출신이라면 쳐다도 보지 않는다는 지옥의 훈련 코스인 남산을 다시 찾은 허재는 중, 고등학교 6년 동안 자신을 훈련시켜 준 호랑이 감독님이 등장하자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제자리에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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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만 내쉬던 감독님은 "아버님이 허재만 놔두고 집을 비울테니까 입원을 시켜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잘못된걸 고쳐달라고 하신거다. 그런데 허재가 머리가 잘 돌아간다. 집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다리고 있더라"며 허재의 당시 잘못에 대해 "고3 전국체육대회 직전까지도 도망갔었다. 동기들을 충동질했다. 그만큼 배포가 강한 선수였다"라고 조심스럽게 일화를 밝혔다.
현주엽은 과거 허재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롤모델이자 우상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혼자서 62득점이라는 전무후무한 개인 최다 득점 기록을 세운 허재를 극찬하며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 대표가 되고 허재와 같은 방을 쓰게 되면서 오랜 시간 품고 있던 환상이 완전히 깨져 버렸다는데. 현주엽은 "사람은 좋았다. 그런데 허재 형은 할 줄 아는게 없다. 라면도 못 끓인다. 야식을 사다줬다. 94년 이후 대표팀에서 허재의 기록은 내 내조 덕이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큰소리쳤다.
허재는 "농구대통령이신데 현주엽에게 한 자리 주신다면"이라는 김원희의 질문에 "농구 시장 정도?"라고 답해 우상이라고 표현했던 현주엽을 섭섭하게 만들었다.
이삼성은 32년만에 만난 허재에게 "한국에서 자영업을 하다가 새로운걸 해보려고 베트남에서 사업을 찾아냈는데 코로나19가 터져서 철수했다"고 근황을 전했다. 허재는 "오늘 안나왔으면 서운할 뻔 했다"고 말했고, 이삼성은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30여년만에 찾아주는 허재가 고마워서 출연했다"고 전했다.
그는 갑자기 사라졌던 이유에 대해 "안 좋은 일을 많이 당했다. 교통사고를 다섯번이나 당하고, 사기도 당하면서 사람을 좀 안만나게 되더라"고 털어놨다. 이후 4인방 중 한명인 이민형도 모습을 드러냈고, 이들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한만성을 떠올리며 마음 아파했다.
jyn201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