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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조는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일요일 밤의 대행진'의 간판스타이자, 모든 국민이 따라한 유행어 제조기였다. 친근하고 바른 이미지로 80년대 당시 'CF의 제왕'이었지만, 언젠가부터 화면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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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와 함께 쌓여갔던 부담감. 김병조는 "최전성기라고 다 기쁜건 아니다"며 양날의 검 같았던 인기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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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10일 한 전당대회에 참석한 김병조는 해당 행사에 참여했다가 원하지 않은 발언을 하게 됐다고. 김병조는 "우리는 연기자다. 대본대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과정에서 그 발언 내용이 언론에 보도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주최 측 대본임을 해명했음에도 불구 사람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고, 그 여파로 광고와 방송 출연 금지를 당하게 됐다.
김병조는 "기대했고, 괜찮은 연기자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실망한 분들이 많이 계셨다. 내 잘못이다"며 "당시 38살이었다.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아픔까지 똑같이 겪고 있는 두 사람의 '평행이론' 인생길도 살펴봤다.
평온했던 삶에 갑작스러운 실명. 김병조는 "강의 중 느낌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중심성 망막 출혈'이라더라. 머릿속에 큰 핏줄이 터져서 고치기가 어렵다고 통증만 없애달라고 했더니 시신경을 끊거나, 진통제를 맞거나였다"며 "강의 중이던 상황이라 시신경 절단을 선택, 눈을 잃게 됐다"고 했다.
이용식은 "망막이 실핏줄이 많다. 터진 줄 모르고 까맣게 됐더라. 피곤해서 그런줄 알았는데, 까만 점이 점점 커지면서 물체는 안 보이다가 시력을 잃게 됐다"고 했다.
이용식은 "눈 하나까지도 서로가 아프고 그런 걸 보면 운명이 신기하다"며 "서로가 같은 프로그램을 오래 하고 모든 게 비슷한데, 아픈 것도 똑같으니까 참 신기하다"고 했다. 먼 곳에서도 같은 운명을 달리던 두 사람이었다.
이수민은 "7~8살 때 심근경색 왔다. 외동으로서 불안감 때문에 꾸준히 아빠를 운동시키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여덟살 딸의 눈물. 이용식은 "딸 때문에 산다. 존재의 이유가 딸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딸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저며온다"며 "지금도 끊임없이 딸의 잔소리가 나의 보약으로 들리고 비타민이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anjee8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