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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회장은 8일 밤 늦게 서울 아산병원 유 감독의 빈소를 찾았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 황선홍, 최용수, 김도훈, 이임생, 현영민, 이천수 등 내로라하는 대한민국 축구 레전드들이 누구 먼저할 것 없이 한자리에 모였다. 피, 땀, 눈물을 아낌없이 쏟아내며 원없이 울고 웃었던 그라운드, 청춘의 나날들이 꿈처럼 지나갔다. 췌장암 4기, 모두 쉽지 않다고들 했지만 치료가 정말 잘됐다며 눈에 띄게 좋아진 모습으로 환히 웃어보이던 '유비'를 보고 안도했었다. "그래, 유상철이니까" 막연한 희망과 기대도 품었다. 그리고 2021년 초여름 밤 홀연히 들려온 부음,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 하늘의 뜻을 조금은 알까말까한 나이 50에 세상을 등진다는 건 떠난 이에게도 남은 이에게도 지독하게 잔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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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스물두 살의 될성부른 골키퍼, 김병지는 울산 현대에서 프로 데뷔했다. 한 살 아래, 유상철은 1년 후인 1993년 겨울 울산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10년간 김병지와 유상철은 대표팀과 울산에서 동고동락하며 대한민국 축구의 아이콘이 됐다. 수많은 역사를 함께 썼다. 김 부회장은 "늘 함께 했던 친구가 이제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할 친구가 됐다. 앞으로 함께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제일 크다. 앞으로 20~30년은 더 함께 해야 하는데"라며 진한 아쉬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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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지금부터의 인생이 진짠데, 저는 은퇴를 늦게 했고, 상철이도 이제 경우 감독으로서 한숨 돌릴 때인데 협회에 있든 현장에 있든 꼭 같은 팀이 아니더라도 같은 생각, 같은 방향을 공유하며 한국 축구를 위해 수많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데, 그걸 함께 못하는 것이 가장 아쉽다." 김 부회장의 목소리가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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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후배가 아닌 선수 유상철에 대해 김 부회장은 "다재다능"이라는 네 글자로 즉답했다. "멀티플레이어의 교과서다.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윙백, 윙포워드, 중앙 미드필더 등 한마디로 골키퍼 빼곤 다했다. 공격수를 보면 득점왕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1m84에 74㎏" 김 부회장은 유 감독의 현역 시절 키-체중을 줄줄 꿰고 있었다. "부모님께 좋은 몸을 물려받았고, 축구센스에 기술력, 제공권을 모두 갖췄으니 안되는 게 없었다. 전 포지션을 할 수 있는 몸을 가졌다. 만약 골키퍼도 했다면 잘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특히 상철이는 윙백일 때는 가장 탁월했다. 윙백들이 대체로 작은 편인데 상철이는 센터백으로도 밀리지 않는 체격이었으니 측면에서 헤딩 경합을 하면 자동으로 어시스트가 됐다"며 함께 뛰던 시절을 돌아봤다.
오랜 동료를 가슴에 묻은 채, 살아남은 이들의 해야할 일은 더욱 확실해졌다. 김 부회장은 이날 오후 6시, 홍명보 울산 감독 등 팀 2002 멤버들과 함께 유 감독의 빈소를 다시 찾을 예정이라고 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