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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 감독은 늘 "멀티 포지션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유 전 감독이 좋은 본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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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과 소속팀 감독들의 입맛에 맞게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플레이메이커), 전방 공격수, 센터백을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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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체구와 축구 지능, 투쟁심을 두루 갖춘 유 전 감독의 존재 덕에 감독들은 경기 중에도 쉽게 전술을 바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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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유 전 감독에 대해 "기량의 우수함은 물론 정신적인 면에서 후배들을 이끌 수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공격 상황에선 날카로운 중거리 슛과 헤더로 골도 잘 넣었는데, 특히 큰 대회, 큰 경기에 강했다.
무릎 부상을 딛고 출전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벨기에전에선 두고두고 회자되는 슬라이딩 슛을 성공시키며 처참한 성적에 아파하는 팬들의 마음을 달랬다.
유 전 감독이 국가대표로 124경기에 출전해 넣은 18골 중에는 한일전 득점도 있었다. 이제 막 대표팀 주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던 1994년 10월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8강에서 천금같은 동점골로 한국이 홈팀 일본을 3대2로 격파하는 데 일조했다.
유 전 감독은 2005년 6월3일 우즈베키스탄과의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를 끝으로 화려한 국대 경력을 마무리했다.
K리그에선 울산에서만 활약한 유 전 감독은 2005년 울산의 마지막 리그 우승의 순간을 함께한 뒤 이듬해 은퇴했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유 전 감독은 울산대, 전남 드래곤즈,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을 맡았다.
인천 사령탑을 맡은 2019년 11월,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은 사실을 공개한 뒤에도 벤치를 지키며 팀의 극적인 잔류를 이끌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 이후 지휘봉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병마와의 싸움에 돌입했다. 한때 호전된 시기도 있었지만, 끝내 마지막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한 채 7일 세상을 떠났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