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가고 싶지만, 이미 결과는 나와 있을 것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좋은 결과가 아니더라도 그게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
도쿄올림픽 야구 대표팀 최종명단 발표 하루 전인 지난 15일. 한화 이글스 투수 강재민(24)이 남긴 말이다.
이날 강재민의 투구는 올 시즌 KBO리그 최고 불펜 투수 타이틀이 아깝지 않았다. 동점 위기에서 흔들림 없이 멀티 이닝을 소화하며 팀의 1점차 리드를 지켰다. 평균자책점 0점대(0.55) 최강 불펜 투수를 향한 기대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정작 도쿄행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덤덤한 표정과 침착한 목소리는 마치 다른 길을 예견한 듯한 뉘앙스였다.
슬픈 예감은 현실이 됐다. 이튿날 발표된 도쿄행 명단에 강재민의 이름은 없었다. 함께 후보로 거론된 정은원(21) 노시환(21) 하주석(27)의 이름도 찾을 수 없었다. 리그 다승 공동 3위 김민우(26)가 김경문호의 부름을 받아 독수리군단의 자존심을 지키긴 했다. 하지만 모두가 마음껏 웃을 순 없는 날이었다.
괴로울 수록 더 웃으라고 했던가. 한화 더그아웃의 미소는 도쿄행의 꿈이 좌절된 젊은 선수들로부터 시작됐다. 16일 롯데와의 더블헤더 두 경기 내내 정은원 노시환 강재민은 큰 웃음 속에 그라운드를 누볐다.
방망이도 매서웠다. 정은원은 더블헤더 1차전에서 3개의 볼넷과 멀티히트, 노시환은 커리어하이로 연결된 시즌 13호 홈런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2차전에서도 동점 상황에서 정은원이 출루, 노시환이 적시타로 팀 승리로 연결되는 결승점을 만들어냈다. 이들이 활약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강재민은 더그아웃 맨 끝에서 진한 포옹과 웃음을 나눴다.
이날 이들의 심정을 헤아리긴 어렵다. "괜찮다"는 말은 실망의 다른 표현이다. 야구 인생을 시작하며 품은 태극마크의 꿈, 어느 때보다 가까이 다가선 시점에서의 좌절은 아플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치른 힘겨운 승부, 더블헤더에서 주눅 들지 않고 올 시즌 자신의 강점을 어필했다. 그라운드에서 펼쳐 보인 기량과 미소를 잃지 않은 담대한 마음 가짐 모두 주목과 박수를 받을 만했다.
때론 좌절은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곤 한다. 자신의 현재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미래의 목표를 더 철저히 준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도쿄행 발표 전 거론된 선수 모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고단한 리빌딩의 길을 택한 한화가 미래로 꼽은 젊은 피다. 주목 받은 지금의 실력을 더 갈고 닦아가면 향후 10년 간 대표 선발 과정에서 이들의 이름은 빠지지 않을 것이다. 어둠 속에 머물렀던 한화의 미래도 그만큼 밝아질 것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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