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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시즌 파워풀한 투타 활약으로 메이저리그를 발칵 뒤집어 놓은 오타니가 전반기를 마감했다. 오타니는 12일(이하 한국시각)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전반기 최종전에서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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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는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 때부터 투타 겸업을 모토로 내걸었다. 2017년 12월 팀을 고를 때 구단들에 설문지를 돌려 투타 겸업에 관한 답을 듣고 에인절스를 선택했다. 에인절스는 그가 원하는대로 투수와 타자로 출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겠다고 약속했다. 오타니에게 돈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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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오타니와 2년 850만달러에 재계약할 당시 에인절스 페리 미나시안 단장은 ESPN 인터뷰에서 "오타니는 올해 투타 겸업을 재개할 모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며 "매우 특별한 스타일의 선수라 협상에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며 합의점을 찾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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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은 물론 오타니에게 달렸다. 메이저리그를 꿈꿀 때처럼 적어도 30세가 될 때까지는 투타 겸업을 고집할 가능성이 높다. 월등한 하드웨어 조건이 의지를 불태울 만하다. 그러나 그 의지가 꺾인다면 결국 피지컬 문제 때문일 것이다.
그가 타격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918년이다. 4~5일에 한 번 선발등판하거나 대타로 가끔 타석에 서는 게 연봉 측면에서 불리하다고 판단하던 터에 1차 세계대전에 빅리거들의 군입대 러시가 이어지면서 선수 부족 사태가 생기자 주전 타자(everyday player)로의 전향을 꿈꾸게 된다.
당시 레드삭스 에드 배로우 감독은 루스의 타자 전향을 망설이다가 외야수 해리 후퍼의 강력한 권유를 받고 투수로 나서지 않는 날 루스를 외야수 또는 1루수로 기용했다. 주전 야수로도 활동폭을 넓힌 루스는 그해 투수로 13승7패, 타자로는 11홈런을 치며 생애 첫 홈런왕에 올랐고, 레드삭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루스의 행보에는 탄력이 붙었다.
타격 재미에 푹 빠진 루스는 1919년 투수로는 9승5패에 그쳤지만 타자로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어 29홈런을 터뜨리며 전국구 홈런타자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메이저리그 최초로 연봉 1만달러를 받은 시즌이 1919년이다.
거포 변신에 성공한 루스는 1920년 뉴욕 양키스로 옮기면서 날개를 달았다. "타자에 전념하라"는 양키스 밀러 허긴스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입단한 그해 라이브볼 시대의 개막과 함께 54홈런을 날리며 메이저리그의 공격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지명타자제도가 없던 그 시절 투수가 타석에 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비록 두 시즌(1918~1919년)이지만 루스처럼 투타에서 모두 정상급 기량을 발휘한 선수는 없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오타니는 '루스의 환생'을 넘어 '현실의 슈퍼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