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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희라는 "나는 가정적이어서 가정이 여러 개 있었다. 순 가정적이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이를 들은 김수연은 "그건 자랑이 아니다"고 분노를 꾹 참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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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은 김희라의 실없는 농담에 조금 웃었지만 이내 씁쓸한 표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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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은 "여자는 촉이라는 게 있지 않나. 그렇지만 딱 대놓고 얘기는 못 하고 내일은 그러지 않겠지. 다음엔 그러지 않겠지 그렇게 넘어갔었다. 여자는 참고 살아야 되는구나. 이렇게만 생각했지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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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은 "그때는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귀가 안 들렸다. 텔레비전을 끝까지 틀어도, 차에서 라디오 볼륨을 최대로 높여도 아무것도 안 들렸다. 길 다닐 때는 벽 잡고 걸었다. 나는 귀가 안 들리면 균형이 안 잡히는 줄 몰랐다. 그래서 3개월 동안 병원 다니면서 주사 맞고, 치료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김수연은 "내 남편인데 누가 살리나. 내가 살려야지.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는 거다"라고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이유를 말했다.
김수연은 "강남에 아파트 두 채가 있었고 땅도 있었고 주위 지인들 중 아시는 분들은 숨어 있는 부자라고 할 정도로 풍족했다"면서 "집만 해도 100억 원은 훨씬 넘었다. 100억 원 이상이 날아갔다"고 말했고, 김희라는 "저절로 없어진 거다"고 덧붙였다.
김수연은 "먼저 우리 아들이 (미국에) 갔고 다음 해에 딸하고 나하고 갔다. 그때까지는 형편이 많이 괜찮았고 그 이후도 괜찮았는데 어느 날 남편이 (생활비) 보내는 것도 다 끊어졌다"고 말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전 재산을 탕진한 김희라. 가족이 없는 사이 여러 사업에 손을 대고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됐다.
김희라는 "가난해지고 그러니까 먹고 살려고 장사도 하고 그랬다. 내가 약을 만들어서 길거리에서 이렇게 펴놨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날 알아보더라. '어? 김희라 약장사하네'라고 하는데 그때 제일 가슴 아팠다. 콱 죽어버릴까 생각도 해봤다. 죽는 게 무섭지 않았다"고 털어놔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런 김희라를 잡아 준 것은 김수연이었다. 김수연은 2000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김희라를 21년째 병수발을 들어주며 그를 보듬었다.
아내의 노력 덕분인지 다시 스크린 앞에 설 수 있게 된 김희라는 뇌경색 후 찍은 영화 '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김수연은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 김희라가 정말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tokki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