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거세진 빗줄기.
18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가 2회말 1사 후 갑작기 내린 폭우로 흠뻑 젖었다.
한화-삼성 간 시즌 10차전. 0-0인 채로 빗줄기 속에 무려 56분 간 멈춰섰다.
마운드에서 내려와 덕아웃에 머물던 삼성 선발 백정현(34). 비가 어느 정도 그치자 마운드에 올랐지만 약 올리듯 다시 굵어진 빗줄기에 피칭을 중단하고 덕아웃으로 돌아가야 했다.
차갑게 식었을 어깨. 벤치와 팬들의 우려가 뭉실뭉실 솟아 올랐다. 팀의 연패 탈출과 함께 데뷔 첫 10승 달성이 걸린 중요한 경기.
하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초조해 보이지 않았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벤치 밖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경기가 재개됐다.
우려대로 백용환에게 볼넷을 허용했다. 하지만 백정현은 장운호 장지승을 연속 삼진 처리하며 이닝을 마쳤다. 빠르게 돌아온 언터처블. 순항을 거듭한 백정현은 결국 6이닝 3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6대2 승리를 이끌며 팀의 연패 탈출과 함께 데뷔 첫 10승을 달성했다. 1시간 여의 우천 중단이란 최악의 상황을 이겨낸 눈부신 호투.
상대 선발인 대표팀 출신 김민우가 재개 후인 3회초 집중 안타를 허용하며 4실점으로 무너진 것과 대비돼 백정현의 호투가 더욱 빛났다.
각종 기록이 쏟아졌다.
11개의 탈삼진은 개인 통산 최다 기록이었다.
지난 5월26일 창원 NC전 이후 파죽의 7연승. 이 기간 동안 평균자책점은 0.72다.
최근 26이닝 연속 무실점으로 평균자책점 선두(2.17)를 굳게 지킨 백정현은 키움 요키시(11승)에 이어 다승 공동 2위에 올랐다. 103⅔이닝으로 토종 선발 중 유일하게 톱5에 이름을 올렸다.
요란하게 내렸던 빗줄기 만큼 시끌벅적 할 만한 기념비적인 승리의 날.
하지만 백정현은 시종일관 무덤덤했다.
10승 달성 경기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그는 "비가 와서 중단됐을 때 빗 소리를 좀 듣고 있었는데 그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에게 빗줄기는 걱정거리가 아닌 즐길거리였다.
"중단되면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경기하면 그대로 준비해서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편하게 있었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무념무상의 경지. 어떤 위기 속에도 흔들림 없이 칼날 같은 제구를 유지하는 이유가 있었다.
텅 비운 마음. 그 공간에 각종 신기록이 쌓여가고 있다. 백정현이 위기의 삼성을 멋지게 구했다. 진정한 에이스의 탄생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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