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할 말이 없다."
27일 10월 열리는 시리아, 이란과의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3, 4차전에 나설 27명의 A대표팀 명단이 공개됐다. 기자회견에 나선 파울루 벤투 감독은 몇몇 선수들의 선발 과정과 자신의 축구 철학에 관해 거침없이 의견을 전했다. 말미 올 시즌 K리그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홍정호(전북 현대) 주민규(제주 유나이티드)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다. 다른 질문에 길게 설명을 이어간 벤투 감독은 이번 질문에는 "할 말이 없다"고 짧게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팬들과 언론은 비판적인 시각을 보냈다.
사실 벤투 감독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질문을 다시 보자. 당시 질문은 "왜 홍정호와 주민규를 뽑지 않았나"가 아니라 "홍정호와 주민규를 뽑지 않았는데, 이들의 어떤 점이 부족했나"였다. 선수들의 개별 단점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길 꺼리는 다른 감독들처럼 벤투 감독 역시 대답을 피했다. 실제 벤투 감독의 정확한 워딩은 "할 말이 없다"가 아닌 "이에 대해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였다. 질문에 대한 '오역'에서 비롯된 '오해'였다.
벤투 감독이 이런 '오해'를 산 이유가 있다. 팬들과 전문가들은 벤투 감독이 'K리그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는 선수' 대신 '자신이 선호하는 선수'만 뽑는다고 비판한다. 벤투 감독을 비판하는 이들이 가장 힘주어 멀하는 이유 중 하나다. 실제로도 그렇다. 벤투 감독은 선수 선발에서 굉장히 보수적이다. 당장 폼이 좋다고 해서 바로 선발하지 않는다. 자신이 정해놓은 풀 안에서 다각도로 비교한 뒤, 선발한다.
예를 들어 왼쪽 풀백에 벤투 감독이 정한 1순위는 A, 2순위는 B, 3순위가 C였는데 D라는 선수가 최근 좋은 모습을 보인다고 치자. 벤투 감독은 바로 D를 뽑기 보다는 D를 4순위에 올려 놓은 뒤, A,B, C의 상황을 체크 후, D를 선발하는 스타일이다.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여러차례 지적하고 언급했지만, 벤투 감독은 자신의 선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고 벤투 감독이 K리거를 외면하느냐, 꼭 그렇지만은 않다. 벤투 감독은 부임 이래 꾸준히 선수풀을 늘렸고, 그 중 상당수는 K리거들이었다. 현재 대표팀의 주요 자원으로 성장한 황인범(루빈 카잔) 김문환(LA FC) 박지수(김천 상무) 이동경(울산) 이동준 나상호(FC서울) 강상우(포항 스틸러스) 송민규(전북) 등은 모두 벤투 감독에 의해 처음으로 A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이다. 해외파가 된 선수도 있지만, 처음 뽑힐 당시 이들의 소속은 모두 K리그였다.
벤투 감독은 이번 명단에서도 K리그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는 백승호 김진수(이상 전북) 이동준(울산 현대)을 택했다. 물론 홍정호 주민규를 비롯해 문선민(전북) 이영재(수원FC) 이창민(제주) 강현무(포항) 등 현재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는 선수들이 제외됐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현재 선발된 자원들을 월등히 넘는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선발되지 않은 이들도 여전히 벤투 감독의 시야 안에 있다는 것이다. 협회 관계자도 "벤투 감독이 새로운, 혹은 기존의 K리거들을 꾸준히 지켜보며 자신의 선발 리스트를 업데이트 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 "할 말이 없다"는 오해를 산 것도, 이 오해를 풀 수 있는 것도 벤투 감독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