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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자는 '가요 신인스타'라는 프로그램으로 16살의 나이로 데뷔했다. 360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린 김연자는 당시 수입에 "주머니에 들어오는 게 돈이었다. 부모님께 집을 해드리고 싶어서 바로 집을 샀다. 그 당시 한 달 수입이 1억 이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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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등' 뿐만 아니라 '씨름의 노래' '아침의 나라에서' 등 히트곡을 연달아 낸 김연자는 '원조 한류스타'였다. 일본에서도 대 히트를 친 김연자는 유명 연말 가요프로그램에서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일본 관객도 사로잡은 가창력과 무대 매너, 김연자는 '엔카의 여왕'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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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자는 "일본에서는 트로트로만은 가수다운 가수로 인정받기 어려워서 외국 노래도 부른다"며 음악적인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일본 대중에게 인정 받기 위한 노력으로 세계 각지에서 러브콜까지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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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북한 공연에 2년 연속 간 김연자는 한 방송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공연을 했다"고 밝혔다. 그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연자의 팬이라며 직접 초청해 모두를 놀라게 했었다고. 김연자는 인터뷰에서 "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가수 김연자는 큰 힘을 가지고 있지 않나"라고 담담히 고백했다.
김연자는 다시 한국에 돌아와 앨범을 냈지만 반응은 썩 좋지 못했다. 하지만 '아모르파티' 무대가 SNS를 타고 입소문이 나면서 4년 만에 다시 전성기를 맞이했다.
전국 공연을 다니며 하루에 기름값만 60만 원, 한 달에 1000만 원의 기름값이 들기도 했다고. 김연자는 '전국 떼창'을 유발하며 대학교 축제에도 초청 받았다.
'아모르 파티'는 처음 '연자송'이었다고. 김연자는 "제 인생을 그렸다고 해서 '연자송'이라 했었다"며 노래 가사처럼 제2의 전성기를 이뤄냈다. '아모르 파티'는 가수 김연자에게 용기를 준 노래기도 했다.
이혼 후 방송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맺은 김연자는 "제 이혼을 도와준 사람이다. 같은 학원 동기였다. 저는 기억을 못한다. 소속사 사장이자 가수이기도 했다"라고 했다. 한 방송을 통해 프러포즈를 받은 김연자는 눈물을 흘리며 감동 받았다. 김연자는 "노래를 들으면서 긴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데뷔 48년 차, 김연자는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 가수로 활약하고 있다. 김연자는 "사생활은 0점이지만 가수로서는 100점이었다, 하고 칭찬 받는 가수로 남고 싶다"고 했다.
shy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