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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는 같은 병원의 3호실에 차려지며 유족으로는 부인 이한숙 씨와 자녀 철승, 효승, 지승, 선희 씨가 있다. 발인은 오는 26일 오전 7시로, 장지는 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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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1959년 우연히 만난 무역업자의 권유로 인해 영화 제작에 몸을 담았다. 첫 영화인 '유정천리'가 탄생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후 1983년 의정부 소재의 빌딩을 인수했고, 빌딩에 있던 극장을 운영하게 되며 영화계와 연을 다시 맺었고, 경기, 강원 지역의 영화 배급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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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고인은 '무릎과 무릎 사이', '뽕', '기쁜 우리 젊은 날' 등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1989년부터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장군의 아들', 서편제' 등을 제작하며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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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장군의 아들'과 '서편제'는 각각 서울 관객 68만 명과 100만 명을 돌파하며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잡았다. 한국 영화 중 최초로 서울 관객 100만명을 돌파한 '서편제'로는 상해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며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으로는 베를린국제영화제 알프레드바우어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2년 후인 2002년 제5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이 영화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해 한국 영화계의 역사를 새로 썼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만든 영화는 임권택 감독이 만들고 조승우가 주연을 맡은 '하류인생'(2004). 이후 고인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의정부 소재의 '태흥시네마'를 확대 운영했으며 태흥영화사가 보유한 저작권을 관리하며 노후를 보냈다.
한국 영화계에 길이 남을 총 37편의 영화를 제작한 고인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옥관문화훈장(1993), 은관문화훈장(2003), 영평상 특별제작자상(1988), 대종상 영화발전공로상(1994), 춘사나운규영화예술제 공로상(2002), 백상예술대상 특별상(2003), 영화제작가협회 공로상(2014) 등을 수상했다.
문지연 기자 lunam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