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KT 위즈 이강철 감독은 마지막 순간까지 냉철한 승부사였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두산이 거의 백기를 들다시피 했지만 단 1%의 자비도 없었다.
맹수가 토끼 한마리를 최선을 다해 몰아가듯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경기 시작 전부터 분위기는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한국시리즈 3연승 후 단 한번도 뒤집힌 적이 없는 100% 승률에 지친 두산은 도전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양 팀의 대조적 분위기는 시작하자마자 현실이 됐다.
기세가 오른 KT는 1회부터 두산 선발 곽 빈을 공략했다.
황재균 장성우 배정대의 적시타로 곽 빈을 ⅔이닝 만에 끌어내리며 선제 3득점을 했다. 큰 점수 차가 벌어질 분위기.
3-0이던 2회 선두 심우준이 내야안타로 출루하자 KT 벤치는 조용호에게 즉시 보내기 번트를 지시했다. 시즌 중이라면 나오지 않았을 경기 초반 번트 작전이었다.
두산을 확실하게 몰아붙이겠다는 이강철 감독의 강한 의지가 묻어있었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황재균과 호잉의 적시타가 이어지며 2점을 보탰다. 5-0. 비록 초반이지만 3연패로 벼랑 끝에 몰린 두산으로선 절망적인 점수 차였다.
두산은 거의 매 이닝 투수를 교체하며 힘겹게 끌고 갔다.
하지만 이강철 감독의 독한 작전 야구는 멈추지 않았다.
찬스마다 보내기 번트 작전이 나왔다. 3회 선두 배정대가 볼넷을 고르자 신본기가 번트를 댔다.
선두 신본기의 솔로포로 6-1로 앞선 5회 9번 심우준이 안타를 치자 조용호는 또 한번 번트를 시도했다.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두산 김태형 감독 아래서 수석 코치를 역임했던 이강철 감독은 두산 선수들의 저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두산 선수들은 쓰러지기 직전이어도 단 1%의 희망만 있으면 들불 처럼 살아날 수 있는 '가을좀비'다.
단 한번의 방심이 시리즈 전체를 내주는 불길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숱한 직간접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이길 수 있을 때 철저하게 눌러야 하는 상대, 바로 두산이었다.
이강철 감독은 시리즈를 마친 뒤 우승 인터뷰에서 "3연승하고도 사전 인터뷰에서 안절부절못했다. 김태형 감독과 선수단이 강하기에 항상 안심을 못했다. 김태형 감독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기면서도 며칠 간 힘들었는데 오늘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처음으로 속내를 보인 셈.
이강철 감독은 지난 13일 열린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전직 깐부'였던 김태형 감독을 향해 "빨리 끝내드리겠다"는 농담을 던졌다.
이 말은 결국 독한 의지 속에 현실이 됐다.
실제 KT가 크게 달아나지 못하는 새 두산은 6회 페르난데스의 2타점 적시타로 3점 차로 추격했다.
4차전으로 끝내지 않으면 또 하루 쉬고 나올 두산이 어떻게 달라질 지 모르는 가능성을 원천에 차단해야 했다. 이 감독은 전날에 이어 고영표를 연이틀 투입한 데 이어 필승조 총동원으로 리드를 끝까지 지키며 기어이 4전 전승 우승을 달성했다. 8회 터진 호잉의 투런포는 우승을 알리는 쐐기홈런이었다.
8-4로 앞선 9회말 2사 후, 박세혁의 땅볼을 강백호가 잡아 1루를 터치하는 순간, 냉철한 승부사의 가슴은 그제서야 뜨겁게 달아올랐다. 눈물 대신 미소가 번졌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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