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뽑힐 거란 기대도 안했어요. 그래도 드래프트 방송은 봤죠. 갑자기 제 이름이 불리고, 어머니가 우셨죠."
신인 드래프트 현장은 보는 이에게 특별한 감동을 준다. 프로팀의 선택에 따른 희비는 선수만이 아니다. 한명 한명, 순서가 넘어갈 때마다 두손을 모아쥔 가족들의 한숨과 안도, 박수가 교차하는 현장이다.
2021 KBO리그 신인 2차지명은 코로나19 여파로 프로팀 관계자 및 취재진만 참석한 채 방송으로 치러졌다. 선수들은 집에서, 혹은 학교나 훈련장에서 TV로 중계를 지켜봤다.
롯데 자이언츠 엄장윤은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경남상고 졸업 후 롯데 외야수를 거쳐 프런트로 일하고 있는 엄정대씨. 아버지의 반대를 이겨내고 야구선수가 됐지만, 고교 시절 타율이 2할을 밑돈다. OPS(출루율+장타율)도 0.6에 미치지 못한다. 프로팀 지명은 생각도 못했다. 내심 야구선수를 포기할 생각도 있었다.
"어릴 때 피로골절로 발 수술도 받고 많이 다쳤었어요. 개명(엄성현→엄장윤)도 액운 물리치려고 한 거고. 친구들 팔꿈치 아플 때 도와주려고 물리치료 공부를 좀 했었죠. 프로는 못갈 거고, 대학 가게 되면 물리치료사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갑자기 제 이름이 나오더라고요."
2차 8라운드, 롯데 차례에 '엄장윤' 세 글자가 나왔다. 1m80이 넘는 키에 당당한 체격, 강한 어깨를 롯데 측이 눈여겨봤다는 후문. 엄장윤은 "어머니는 막 우셨는데, 전 어안이 벙벙했어요. 나중에 어머니가 보시지 않는데서 혼자 울었죠"라며 멋적게 웃었다. 중학교 동기 최원영(LG트윈스)의 축하 전화를 받고서야 실감이 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야구하고 싶다고 했는데, 아버지가 '취미로도 하지 말라'며 반대하셨어요. 2년 뒤에 다시 하고 싶다고 해서 결국 하게 됐죠. 처음엔 투수 겸 내야수였고, 중학교 때 포수 겸 투수가 됐고, 고등학교 와선 포수만 했어요. 아버지처럼 달리기가 빠르진 않고(100m 13초대), 대신 체격이 좋으니까. 사실 야구선수는 되고 싶었지만, 될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드래프트 되는 순간에 '나 야구선수 되는 거야?'라는 생각을 했죠."
아버지의 반응이 궁금했다. 엄장윤은 "원정 때라 전화를 하셨더라구요. '오늘 하루만 딱 기뻐하고 내일부터 다시 연습해라'라고 하셨어요"라며 웃었다.
동기 중엔 '홈스쿨링 야구선수'로 유명한 김서진과 룸메이트다. 엄장윤은 "사실 어떤 사람인지 정말 궁금하고 기대됐거든요? 전 친해지기 전엔 낯을 좀 가리는 편인데, 성격이 잘 맞더라구요. 금방 친해졌어요. 다만 (김서진이)코를 너무 골아서 좀 괴롭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롤모델은 카이 타쿠야(소프트뱅크 호크스)다. '카이 캐논'이란 별명처럼 폭발적인 도루 저지로 유명한 선수다. 팝 타임(포수가 볼을 꺼내 2루에 던지는 시간)이 평균 1.83초로 일본프로야구(NPB)에서 가장 빠른 선수다. 중3 때 일본에 놀러갔다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다고.
국내 선수 중엔 박세혁(두산 베어스)이다. 포수 수비는 물론 주루까지 잘하는 모습이 자신의 이상향이다. 롯데 입단 이후론 정보근과 강태율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루키스데이 때는 "아버지보다 롯데에서 오래 뛰겠습니다!"라는 뜨거운 소감으로 박수를 받았다.
인터뷰 마무리차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갑자기 엄장윤의 목이 콱 메었다. 엄장윤은 울컥하게 잠긴 목소리로 "부모님도 그렇지만, 이 기회에 할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네요"라고 답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니까, 사실상 할머니가 제 야구 뒷바라지를 다 해주셨어요. 매일매일 밥차려 주시고, 빨래 해주시고, 보통 일 아니잖아요. 내년엔 2군에서 많이 뛰면서 프로 무대에 적응하는 게 목표입니다. 훌륭한 야구선수가 된 손자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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