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앨버트 푸홀스(42)는 지난해 9월 시즌 막판 ESPN 인터뷰에서 "뭘 이루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야구를 사랑할 뿐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의지대로 은퇴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LA 다저스 소속이던 푸홀스는 백업 1루수로, 좌투수 대타 요원으로 꽤 영양가 넘치는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은퇴와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이다.
푸홀스는 지난 겨울 도미니칸윈터리그에 참가했다. 고국에서 열리는 윈터리그에 한 번도 뛴 적이 없는 그가 느닷없이 10~20살이나 어린 후배들과 땀을 흘린 건 현역 연장 의지 때문이었다. FA 신분이었던 푸홀스는 자신이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16경기에 출전해 타율 0.237, 1홈런, 6타점을 올렸다.
그때도 "난 늘 때가 되면 은퇴하겠다고 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내년에 집에 틀어박혀 있고 싶지 않다. 난 아직 뛸 수 있다"며 빅리그 무대를 누빌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시장은 녹록치 않았다. 락아웃이 길어지면서 푸홀스에겐 이렇다 할 오퍼가 오지 않았다. 어느 구단이 나이 마흔을 넘긴, 한물간 슈퍼스타를 선뜻 영입할 수 있겠는가. 푸홀스같은 커리어를 지닌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선 구단주의 의지와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결국 친정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밖에 없었다.
푸홀스가 2012년 LA 에인절스로 옮긴 뒤 처음으로 부시스타디움을 찾은 2019년 6월 그가 홈런포를 터뜨리자 관중석을 가득 메운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기립 박수와 환호를 보내줬다. 이적 후 8년이 지났음에도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그를 '우리 선수'로 대우했다. 감격해 한 푸홀스는 기꺼이 커튼 콜로 응했다.
푸홀스가 28일(한국시각) 세인트루이스와 1년 250만달러 계약에 합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락아웃 해제 후 2주가 넘게 흐른 시점에야 계약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세인트루이스 구단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데려오려면 단순히 레전드가 아닌, 그라운드에서의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고민했을 것이다.
ESPN은 '오프시즌 동안 푸홀스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보편적 지명타자 도입이 그에게 숨통을 틔워줬다. 세인트루이스는 폴 골드슈미트가 주전 1루수다. 푸홀스는 코리 디커슨과 함께 상대 투수 유형에 따라 지명타자로 출전할 수 있다'고 전했다.
푸홀스의 역할은 상대 좌완선발일 때 지명타자, 그게 아니면 경기 후반 대타감이란 얘기다. 지난 시즌 푸홀스는 좌투수 상대로 타율 0.294를 쳤다.
푸홀스는 왜 현역 연장에 집착했을까. 돈은 벌만큼 벌었고, 월드시리즈 우승도 2006년, 2011년 두 번 해봤다. 그에게 남은 목표는 개인통산 700홈런 뿐이다. 21개가 남았다. 푸홀스는 '약물 시대'가 본격 열린 200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신인왕에 올랐고, MVP도 세 번 차지했다. 스테로이드와 관련해 깨끗한 선수로 21년을 걸어왔다.
통산 홈런 순위에서 배리 본즈(762개), 행크 애런(755개), 베이브 루스(714개), 알렉스 로드리게스(696개)에 이어 5위다. 위인으로 남은 애런과 루스는 범접 불가의 레전드다. 푸홀스는 약물 스캔들로 커리어에 큰 흠집이 난 본즈, 로드리게스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걸 700홈런으로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그건 선수로서 아주 순수한 욕심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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