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김광현이 '깨끗이 보내고 다음 타자와 승부하겠다'고 했다. 나도 흔쾌히 동의했다.
1-1로 치열하게 맞선 6회. SSG랜더스 김광현의 투구수는 100구에 근접하고 있었다.
2사 후 롯데 자이언츠 한동희에게 2루타를 허용했다. 다음 타자는 이대호. 이때 김원형 SSG 감독이 마운드로 올라갔다. 김광현은 멋적은 미소를 지으며 이대호를 보낸 뒤 피터스를 유격수 땅볼로 처리했다.
28일 만난 김원형 감독은 "김광현이 먼저 제안한 것"이라며 웃었다.
"어렵게 하다가 실투하면 안 좋은 결과가 나오니까. 그냥 보내고 다음 타자랑 붙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사실 투수 입장에서 제일 어려운 주문이 벤치에서 '어렵게 하다가 안되면 보내라'는 사인이 나오는 거다. 그럴 바엔 깨끗이 보내고 다음 타자(피터스)와 힘있게 붙는 게 낫다고 봤다."
이날 김광현은 에이스가 보여줄 수 있는 면모를 다양하게 드러냈다. 2회까지 무려 47구를 던지며 고전했고, 수비 실수가 더해지며 먼저 선취점을 내줬다. 하지만 이후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호투를 이어갔다.
김 감독은 "한두 이닝은 많이 던질 수도 있다. 얼마나 (조절을)잘해서 정해진 숫자를 채우는 동안 몇이닝까지 갈 수 있는가가 에이스의 경기 운영"이라고 설명했다. 구속이 지난 경기보다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고. 롯데는 팀타율 1위의 강타선을 자랑하는 팀이고, 이날 오른손 타자 중심으로 김광현 저격용 라인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에 앞서 만난 래리 서튼 롯데 감독 역시 "3회부터 자기 전략을 완전히 바꿔서 올라왔다. 역시 특별한 재능이다. 특히 체인지업이 대단했다"며 솔직한 감탄을 표했다.
김광현은 올시즌 4경기에 등판, 자책점이 단 1점 뿐이다. 그러면서도 6-7-6-6이닝으로 매경기 퀄리티스타트(QS·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기록중이다. 김광현은 규정이닝 진입과 동시에 평균자책점 0.36을 기록, 찰리 반즈(0.54)를 제치고 이 부문 1위가 됐다. KBO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0점대 평균자책점은 김광현과 반즈 2명 뿐이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최주환과 최정의 연속 실책으로 1점을 내준 부분. 김원형 감독은 "일몰 직전에 하늘이 회색빛이 되면서 뜬공을 잡기 어려운 타이밍이 있다. 하필 그때 바람도 많이 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부산=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