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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개 이상 쳐야 한다" 1라운드 3순위 특급내야수, 그는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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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비운다는 것.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눈 앞에 집착하게 하는 무언가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잔상은 늘 미련을 남긴다.

불경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은 물리학의 질량보존의 법칙과 상통한다. 물체가 눈 앞에서 없어져도 형체가 변한 것 뿐 여전히 다른 에너지로 존재한다는 사실. 생각을 넓히면 굳이 한가지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타자는 홈런에 집착하고, 투수는 삼진에 집착한다.

좋지 않은 결과를 부르는 경우가 흔하다. 힘이 들어가고 스윙이 커지면서 밸런스를 잃고 슬럼프에 빠진다. 세게 던지려고 하고, 완벽하게 코너워크를 하려다보면 투구수와 4사구가 늘면서 경기를 망친다.

타고난 재능과 쌓아온 훈련량이 선수의 현재를 만든다. 그 선수의 능력 범위는 정해져 있다.

갑자기 홈런이 늘면 타율이 떨어지고, 삼진이 늘면 4사구도 늘어난다.

예외는 성장과정에서 자신의 능력 범위를 미처 채우지 못한 경우 밖에 없다. 성장하는 유망주도 자기 능력 범위를 채우면 내 안에서의 제로섬게임의 법칙이 가동된다.

두산 내야수 강승호(28)가 배트를 짧게 쥐고 성공가도를 열고 있다.

4월 침묵을 깨고 5월 들어 9경기에서 36타수15안타(0.417) 10타점으로 펄펄 날고 있다. 단 1경기를 제외하곤 매 경기 안타 행진 중. 10일 키움전에서는 1721일 만에 4안타 경기도 펼쳤다. 3안타 경기도 두차례나 된다.

엄청난 타격 재능을 인정받으며 2013년 1라운드 3순위로 프로 무대에 입문했지만 단 한번도 3할 타율, 10홈런, 50타점을 기록해보지 못했던 선수.

"주변에서 '너는 힘이 좋으니까 홈런을 두 자릿수 홈런을 쳐야 된다, 20개 이상 쳐야 된다' 그런 말들이 많이 들으면서 야구를 했어요. 이제는 그런 주변의 말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길이나 제가 선택하고 싶은 길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장타에 대한 큰 욕심을 버리고 일단 공을 맞추는 컨택 위주로 가자고 마음 먹었어요."

프로 입문 어느덧 10년 차.

"어느 날 문득 마음이 끌리는 대로 짧게 잡은 방망이"가 마술을 부리고 있다.

배트를 쥐는 위치는 달라졌지만 강승호는 달라지지 않았다. 홈런 하나를 만들기 위해 희생됐던 그 안의 에너지가 짧아진 방망이로 모여들고 있을 뿐. 비록 20홈런은 달성하지 못할 수 있지만 데뷔 첫 3할 타율은 가능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찬스에서 높아진 컨택 비율이 더 많은 타점을 선사할 거란 사실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