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날 오민석은 송해에게 '나는 딴따라다'를 먼저 제안했다고 했다. 그는 송해가 "나 같은 딴따라 이야기를 무슨 가치가 있다고 쓰느냐"고 반대하자 "선생님은 살아 있는 박물관입니다. 일제시대 때부터 1927년(송해씨 출생년도)이면 일제강점기 한복판이지 않습니까. 한국전쟁 이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사건들인데 선생님 얘기를 쓰면 선생님 개인사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까지 얘기할 수 있다. 또 유랑극단 시절부터 한류까지 그 중심에 계속 있었기 때문에 한국대중문화사를 이렇게 서베이(조사)하는 것도 되고 그다음에 한국 방송사 라디오, 흑백, 컬러TV 이렇게 이어지는 이건 굉장히 중요한 기록입니다. 선생님 연예인 후배들을 위해서 기록을 해야 됩니다"라고 설득했다. 진심이 통했던 걸까 송해는 오민석의 얘기에 승낙을 했고, 그때부터 두 사람은 1년 간 동행했다.
Advertisement
오민석은 "지금은 유명해지셨으니까 마치 송해 선생님이 갑 같지만, 방송 시스템에선 PD들이 갑이고 우리들이 을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을이던 시절에도 처음부터 그런 식이었다고 한다. 무대의 완결성을 위해서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Advertisement
오랜 세월을 함께한 악단 단원들을 위해 직접 나서 목소리를 내 출연료 받은 사연도 공개됐다.
Advertisement
송해는 생전 "공평하게"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었다고. 오민석은 "전국노래자랑 녹화할 때 그 지역의 행정가들, 지역 국회의원이라든가 지자체장들에게 절대 별도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다. 자리 없으면 중간에 앉으라고 한다. 이 무대의 주인은 행정가들이 아니라 국민들이고 시민들이기 때문이다"라며 "어느 지역에서 리허설을 하는데, 공무원들이 관객들 앉는 플라스틱 의자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그러자 뭐라하셨다. 물어보니까 공무원들이 '여기 군수님 앉아야 되고, 구의원 앉아야 된다'고 하니까 송해가 그냥 소리를 지르셨다. '당장 치워라' '지금 뭐하는 짓이냐. 당신들이 제일 앞자리에 그렇게 앉아 있으면 관객 국민들이 다 긴장한다. 앉고 싶으면 저 뒤에 아무데나 퍼져 앉아라. 특석이라는 건 없다'고 했다. 저는 그 위계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게 아주 좋았다"고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