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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숙 자기님은 미용실을 운영하며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과 정 넘치는 쉼터를 제공하며 10대 청소년들의 엄마로 오랜시간 봉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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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저도 학교 졸업할 때까지 도시락을 친구랑 한 번 먹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왕따'였다"라며 "누가 편만 들어주면 될 것 같고, 공부 못해도 괜찮다. 좋아하는 걸 찾으면 거기에 관련된 공부는 잘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해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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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이들을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2년. 보통 두 세명에서 많게는 여섯명을 돌봤다"고 밝힌 임천숙 자기님은 "방이 두 개였다"고 덧붙여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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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 끼 밥 제일 많이 해본게 40명 분이다"라는 임천숙 자기님은 "모자 가정이어서 시에서 쌀이랑 라면 나오는거 벌어서 충당이 안되면 전기선 부업을 했다"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다. "가출한 학생들을 돌본지 15년 됐다"면서 "생일에 케이크를 사오는 아이들도 있고, 스승의 날 카네이션을 말 없이 두고 가는 아이들도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또한 어머니의 봉사에 서운했던 어린시절을 묻자, "언니 오빠들을 엄마가 케어 하니까 제 친구들은 엄마가 저희 엄마인줄 몰랐다. 엄마를 엄마라고 말하지 못하는 기분이랄까'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에 찬미는 "롤모델은 '엄마'다. 엄마처럼만 살면 후회 없을 것 같다"면서 최근 김찬미'에서 '임찬미'로 바꾼 이유를 밝혔다. 그는 "성은 본이다. 내가 태어나고 길러주고 내 모든 것의 뿌리가 엄마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았고, 앞으로 저는 엄마랑 같이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엄마의 성을 따라서 사는게 맞다고 생각했다"는 소신을 이야기했다.
찬미 역시 10대 시절부터 연습생 시절을 거쳐 걸그룹으로 활동했다. 이에 임천숙 자기님은 "처음엔 반대를 했다. 연습생 하면서 마지막 기회인 줄 알고 정말 열심히 했다. 하루에 잠을 2~3시간 자고 했다"며 딸의 노력을 언급했다.
찬미는 "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일찍 했는데, 빨리 돈을 벌어서 집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연습생을 할 기회가 생겼고, 모두의 삶이 제가 있는 방향으로 모아지고 있는게 느껴졌다. 그래서 오래 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3년 안에 데뷔를 못하면 끝이다 생각했다. 무조건 그 안에 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또한 "몇년 전 엄마에게 '나 그냥 그만할까' 했더니, '찬미가 행복하지 않고 그만하고 싶으면 그만해야지. 엄마 가게 와서 엄마 도와줘'라고 하셨다. 정말 힘이 됐었다"면서 "언제든지 그만할 수 있으니까 조금만 더 해봐야지. 다들 버티라고 하는데,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려줘서 진짜 고마웠어요"라고 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로 태어나고 싶다. 재벌이던 지금보다 더 상황이 안 좋아도 엄마 딸로 태어나면 그런건 상관없다"는 마음을 전했다.임찬숙 자기님도 찬미에게 "미안한 말을 안할게. 고마워.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했다.
olzllove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