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KBO리그는 메이저리그 정착에 실패한 예비 빅리거들에게 약속의 무대로 통한다.
KBO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 입성에 성공한 사례들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일종의 '역수출'이다. 외국인 선수 제도 초창기엔 꿈꾸지도 못한 일이다. 한국야구의 성장을 말해 준다.
최근 사례를 들어보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메릴 켈리(34)와 시애틀 매리너스 크리스 플렉센(28)이 대표적이다. 둘 다 올해 소속팀서 주축 선발투수로 활약 중이다.
켈리는 2015~2018년 SK에서 4년 통산 48승32패,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한 뒤 2019년 4년 1450만달러에 애리조나와 계약하며 꿈을 이뤘다. SK는 당시 켈리와 재계약 방침이었지만, 메이저리그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발빠르게 대체 외인투수를 물색했다.
켈리는 포심과 투심, 커터, 체인지업, 커브 등 5개 구종을 모두 능숙하게 구사하며, 올해 직구 스피드는 평균 92.7마일로 빅리그 입성 후 최고치를 찍고 있다. 올시즌 18경기에서 8승5패, 평균자책점 3.36을 마크 중인 그는 매디슨 범가너를 제치고 실질적 에이스 노릇을 하고 있다. 올시즌 개막을 앞두고는 2년 1800만달러에 연장계약을 맺어 2024년까지 잔류를 확정했다.
플렉센은 2020년 두산에 입단해 21경기에서 8승4패, 평균자책점 3.01을 기록했다. 플렉센이 1년 만에 빅리그의 러브콜을 받은 건 그해 시즌 후반 강력한 피칭을 펼쳤기 때문이다. 정규시즌 마지막 5경기에서 4승, 평균자책점 0.85, 포스트시즌 5경기에서는 2승1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1.91을 올렸다.
당시 두산은 플렉센을 붙잡으려 했지만, 계획을 급하게 틀어야 했다. 플렉센은 시애틀과 2년 475만달러에 계약했다. 현재 활약상을 이어가면 내년 옵션도 실행 가능성이 높다. 이날 현재 17경기에서 6승8패, 평균자책점 3.84를 기록 중이다. 지난 5월 28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부터 14일 워싱턴 내셔널스전까지 9경기 연속 5이닝 이상 3실점 이하로 던졌다.
둘에 덧붙여 또 한 명의 역수출 상품이 탄생할 조짐이다. SSG 랜더스 우완 윌머 폰트(32)다. 폰트는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한국에 오기 전 빅리그 경험을 꽤 쌓았다. 2012년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데뷔해 2020년까지 통산 96경기에서 7승11패를 올렸다. 하지만 6팀을 전전했고,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등 불안정한 신분이었다. SSG 입단 직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중간계투로 활약했다.
작년 100만달러에 입단한 그는 25경기에서 8승5패, 평균자책점 3.46을 기록했다. 부상이 잦았고, 투구 내용도 평범했다. 그러나 SSG는 구위와 건강을 믿고 올해 150만달러에 재계약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90승의 스펙을 자랑하는 이반 노바가 주목받고 시즌을 맞았지만, 그는 퇴출됐고 지금은 폰트가 SSG의 실질적 에이스다.
폰트는 14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8이닝 5안타 1실점의 호투로 시즌 11승을 따냈다. 평균자책점을 1.96으로 1점대로 다시 낮췄다. 다승과 평균자책점 각 2위, 탈삼진(114) 3위, 투구이닝(124) 2위, WHIP(0.77) 1위다.
최고 150㎞대 중반의 직구와 커터, 슬라이더, 투심, 커브를 고루 구사하는 그는 무엇보다 제구력 향상이 눈에 띈다. 피안타율과 볼넷 비율이 지난해 0.211-7.45%에서 0.175-3.88%로 크게 호전됐다.
이날 인천에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대거 눈에 띄었다. 키움 이정후가 아니라 폰트가 주 관찰 대상이었을 지 모른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