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고의4구(intentional base on balls)는 1루를 채우고 다음 타자 때 병살 등 포스아웃을 노리는 작전이다. 예전엔 볼 4개를 전부 던져야 했지만, 규정이 바뀌어 상대 벤치가 사인을 보내면 그냥 걸어나갈 수 있다.
고의4구는 박빙의 승부에서 나오는데, 아무나 얻는 게 아니다. 3할 또는 30홈런을 거뜬히 칠 수 있을 정도로 기량을 인정받은 타자라야 한다.
역대 KBO리그 한 시즌 최다 고의4구는 1997년 해태 타이거즈 이종범이 세웠다. 무려 30번이나 공짜로 걸어나갔다. 일본 진출 직전 시즌으로 이종범은 그해 타율 0.324, 30홈런, 74타점, 112득점, 64도루를 올렸다. 톱타자로 홈런도 30개를 쳤으니 당시엔 센세이셔널한 시즌이었다.
그렇다면 요즘 가장 무서운 타자는 누구일까. 고의4구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다. 당시 아버지 만큼은 아니지만 상대에게는 두려운 존재가 됐다. 26일 현재 고의4구 부문서 삼성 라이온즈 호세 피렐라와 함께 12개로 공동 1위다. 이정후와 피렐라는 정규시즌 MVP 유력 후보로 경쟁하고 있다.
두 선수 모두 남은 시즌 고의4구를 1~2개 정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2011년 최형우(당시 삼성 라이온즈)가 15개를 얻은 이후 이 부문 한 시즌 최다 기록이 된다. 최형우가 타율 0.340, 30홈런, 118타점을 올리며 KBO를 대표하는 4번타자로 자리매김한 시즌이다.
이정후의 한 시즌 최다 고의4구는 2020년 6개다. 그 두 배 이상을 얻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정후는 올시즌 3번타자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3번은 찬스에서 주자를 불러들이는 클러치 능력이 요구되는 타순이다. 이날 현재 타점 108개로 1위다. 뿐만 아니라 이정후는 타율, 안타, 출루율, 장타율까지 5개 부문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가치있는 항목을 고르라면 3번타자로서 당연히 타점이다.
이정후의 올시즌 득점권 타율은 0.389(131타수 51안타)로 역시 1위다. 그는 지난 24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5타수 3안타를 치며 4타점을 올렸다. 1회말 1사 2루서 우중간 2루타, 5회말 1사 1,3루서 중월 홈런 등 득점권에서 모두 적시타를 터뜨렸다.
또 하나, 이정후가 무서운 것은 좀처럼 삼진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까지 30삼진은 규정타석을 채운 46명 중 가장 적은 수치며, 전체 타자들 중 최다 공동 125위다. 피렐라의 삼진은 이정후의 2배가 넘은 74개이며, 삼진을 거의 당하지 않는다는 두산 베어스 호세 페르난데스도 올해 벌써 45개의 삼진을 당했다. 통산 삼진율이 7.90%로 선구안이 뛰어났던 아버지 통산 8.99%보다도 좋다.
"MVP는 고의4구 순위로 정하자. 그만큼 무서우니까"라고 한 감독이 있었다. 일리 있는 말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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