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제6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오는 2026년 열린다.
4년마다 개최되는 WBC가 다음 대회를 3년 후에 여는 건 이번 제5회 대회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때문에 2년이 밀렸기 때문이다. 대회 간격 조정을 위해 다음 대회는 3년 뒤에 하고 이후에는 다시 4년 간격으로 돌아가게 된다.
3연속 1라운드 탈락 굴욕을 안은 한국 야구는 3년 뒤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불가능하다. 정확히는 미국 야구, 더 구체적으로는 메이저리그 트렌드다. 메이저와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각국 대표팀을 구성해 WBC에 출전한다는 점에서 미국 야구 흐름을 쫓지 않으면 한국 야구는 계속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야구의 흐름은 힘의 야구를 말한다. 타자에게는 파워와 기동력, 빠른 배트스피드를 요구하고, 투수는 강속구와 빠른 상황 판단이 필수적이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니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힘이 바탕이 되지 않고는 미국, 일본, 중남미 강호들은 물론 호주, 유럽 다크호스 등 저변을 확대해 나가는 후발 주자들에게 영원히 뒤처지고 만다.
13일 체코를 8대3으로 꺾고 사상 처음으로 WBC 8강에 성공한 B조의 호주를 보자. 선발 잭 오러글린이 2⅔이닝 1안타 1실점, 미치 뉴언본이 2⅓이닝 1안타 5탈삼진 무실점, 다니엘 맥그래스가 2⅔이닝 3안타 2실점, 샘 홀랜드가 ⅓이닝 1안타 무실점, 존 케네디가 1이닝 2안타 무실점을 각각 기록했다. 투수들의 효과적인 계투 작전이 돋보였다.
오러글린은 78%를 던진 포심 및 싱커의 최고 구속이 94.1마일, 평균 92.1마일을 찍었고, 뉴언본은 48%의 비중을 차지한 포심이 최고 95.4마일, 평균 93.3마일을 나타냈다. 나머지 불펜 3명은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커브를 60~90% 이상 던지는 변화구 투수로 직구 구속은 90마일 안팎으로 의미가 없었다. 오러글린은 마이너리그 싱글A+ 및 호주프로리그(AUBL) 투수이고, 뉴언본도 AUBL 소속이다. KBO리그로 치면 150㎞ 직구를 안정된 제구로 던진 경기다.
그동안 한국은 호주 야구를 얕잡아본 게 사실이다. 우리가 호주보다 야구를 잘 한다고 알고 있지만, 그건 우물 안 개구리 인식이다. 저변과 흐름에서 한국은 호주에 역전을 당한 지 오래다. 특히 형편없는 제구력에 89마일 안팎의 구속이 평균 실력인 KBO리그 투수들의 현주소를 감안하면 호주보다 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첫 경기에서 호주에 7대8로 패한 건 전혀 이상하지 않고 이변도 아니다. 애시당초 호주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90마일 안팎의 공이 한복판, 혹은 높은 코스로 오는데 못 칠 타자들이 아니었다. 김원중과 양현종은 결정적인 3점홈런 2개를 얻어맞았다.
다음 날 일본전에서 한국 투수 10명 중 최고 구속이 93마일 이상 나온 투수는 3명 뿐이었다. 곽 빈이 94.8마일, 이의리가 96.4마일, 박세웅이 93마일을 겨우 뿌렸다. 선발 김광현은 93마일 직구가 한 개도 없었다.
반면 일본은 다르빗슈 유, 이마나가 쇼타, 우다가와 유키, 마쓰이 유키, 다카하시 히로토 등 5명 모두 최고 93마일 이상의 공을 뿌렸으며, 4명은 평균 구속이 93마일 이상이었다. 일본 투수들의 구속과 정교한 제구에 그저 감탄만 쏟아낼 뿐이었다.
12일 조별리그가 시작된 C조의 미국과 멕시코, D조의 베네수엘라, 도미니카공화국, 푸에르토리코 투수들 중에는 93마일 이하의 직구를 찾기 힘들다. 90마일대 중후반이 기본이고, 100마일 이상 투수들도 수두룩하다.
일본 대표팀의 사사키 로키는 지난 11일 체코전에서 1회 101.9마일의 강속구를 뿌렸다. 투구수 66개 가운데 100마일 이상이 21개나 됐다. 사사키는 당장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경우 8~10년, 총액 3억달러를 받을 수 있다는 MLB.com의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파워피처가 득세하는 건 빠른 공이 타자를 압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믿고 있고, 실제 그렇기 때문이다. 일본도 2000년 이후 구속 증가 현상이 뚜렷하다. 한국 투수들은 93마일 이상 뿌리면 제구를 담보하기 힘들어진다. 아마추어와 프로 육성 시스템에서 문제를 들여다 봐야 한다.
강속구 투수를 확보하지 않고는 3년 뒤에도 비슷한 분위기 속에서 경우의 수를 따지고 있을 지 모른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