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권인하 기자]지난 23일 KT 위즈-KIA 타이거즈전이 열린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 1회말 KIA 타이거즈 공격 때. 2사 1,2루에서 5번 소크라테스 타석 때 KT 투수 윌리엄 쿠에바스가 볼을 연거푸 2개 던지자 KT 벤치에서 타임을 요청했다. 더그아웃에서 걸어나온 이는 김태한 투수코치가 아닌 이강철 감독이었다.
쿠에바스가 잘 안풀릴 때 흥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이 감독이 직접 올라오기도 한다. 4번 최형우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주고 소크라테스에게 연속 볼을 던진 장면이 흥분한 상태로 보인 듯 했다. 이후 쿠에바스는 9회말 1사까지 안타를 하나도 내주지 않는 노히트노런 행진을 했다.
경기 후 쿠에바스에게 이 감독의 조언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어보니 다름 아닌 팔 각도였다고. 팔이 처져서 내려오니 팔각도를 올려라고 했다고. 쿠에바스는 "내가 던지는 것을 내 스스로는 볼 수 없는데 감독님께서 말씀을 해주셔서 고마웠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이 감독은 "분위기를 끊는 목적도 있었는데 팔이 처져서 내려오더라"면서 "팔이 처지면 체인지업이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처음부터 옆에서 오다보니까 낮게 와서 타자들이 속지 않게 된다. 그래서 올라가서 얘기해 준 것"이라고 했다.
1회말이 끝나고 더그아웃에서 말해도 됐을 텐데 빨리 말해준 덕에 쿠에바스는 1회를 실점없이 넘기면서 노히트 행진을 할 수 있었다. 이 감독은 "오랜만에 대기록을 직접 보는가 했는데…. 그걸 못하냐"고 농담을 하며 자신의 일처럼 크게 아쉬워 했다.
이 감독의 투수 보는 '눈'은 정평이 나있다. 확실한 결정구를 중심으로 피치 디자인을 바꿔 성공시키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박시영이다. 롯데에서 던질 때만해도 직구와 포크볼 슬라이더 커브 등을 던졌던 박시영은 2021년 KT로 온 뒤 직구와 슬라이더 위주의 피칭으로 오히려 구종을 단조롭게 바꿨다. 슬라이더가 직구와 비슷하게 오면서 종으로 떨어지는 위력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 슬라이더 비중을 높였고, 그것이 효과를 봐 박시영은 그해 KT의 셋업맨으로 우뚝 서며 창단 첫 우승 멤버가 됐다.
그렇다보니 이 감독에게 문의를 하는 타 팀 투수도 있다고. 예전에 우연히 인사를 한 타 팀 투수가 잘 안된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이 감독이 덕담을 하며 팁을 건넨 적이 있었다고. 이 감독은 "다음에 우리 팀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다른 패턴으로 공을 던지더라. 깜짝 놀랐다. 우리 타자들이 꼼짝도 못했다"며 난감했다고.
이 감독의 1회 방문 덕분으로 쿠에바스가 무실점 피칭을 한 덕분에 KT는 2승8패로 올시즌 이상하게 만나기만 하면 꼬인 KIA에 4대1로 승리를 거뒀고, 다음날인 24일에도 3대2의 승리로 주말 3연전서 2승1패로 위닝시리즈를 거두며 2위를 굳게 지킬 수 있었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