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들어오면 바로 써야겠는데요.(웃음)."
KT 위즈 이강철 감독은 류중일호에 승선해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우완 박영현의 공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미국 애리조나 캠프 때부터 공이 좋았다. 올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던 이 감독은 "지금 던지는 공이 그 당시 모습과 흡사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대표팀에서 돌아오면) 바로 써야겠다"며 껄껄 웃었다.
5일 일본전에서도 박영현의 공엔 힘이 넘쳤다. 1-0으로 앞선 8회초 박세웅-최지민에 이은 세 번째 투수로 마운드를 이어 받은 박영현. 1점차 리드를 안정적으로 지키며 '클로저' 고우석으로 이어지는 교두보라는 중책을 맡은 그는 거침 없이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꽂았다. 최고 구속 154㎞의 직구를 연신 뿌렸다. 타석에 선 일본 타자들조차 어려워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대부분의 스윙이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고, 배트에 맞아도 공이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첫 타자 나카무라를 삼진, 두 번째 타자 기나미를 땅볼로 잡으며 순항하던 박영현은 나카가와에 좌익수 키를 넘기는 2루타를 허용했다. 하지만 타구 방향을 보면 좌익수 김성윤이 전진수비를 한 게 2루타로 연결되는 빌미가 됐다고 볼 만했다.
장타 허용 후 마운드에 오른 대표팀 최일언 코치, 포수 김형준과 이야기를 나눈 박영현.
흔들림은 없었다. 박영현은 이어진 타석에서 대타 시모카와를 초구에 중견수 뜬공 처리하면서 실점 없이 이닝을 마쳤다. 총 투구수 10개. 박영현의 역투에 힘입어 리드를 지킨 한국은 8회말 2사 2루에서 터진 노시환의 좌전 적시타로 추가점을 뽑고 승기를 잡는 데 성공했다.
이 상황에서 대표팀은 의외의 선택을 했다. 2-0 리드를 안은 9회초 마무리 고우석 대신 박영현을 그대로 밀고 간 것. 8회초 박영현이 보여준 구위가 그만큼 좋았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뜻밖의 위기가 찾아왔다. 첫 타자 기타무라에 평범한 유격수 땅볼을 유도했지만, 1루수 문보경이 송구를 놓쳐 출루를 허용했다. 박영현은 후속 타자 사토에 우전 안타를 내주며 무사 1, 2루 동점 위기에 몰렸다. 고우석이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었지만 곧바로 등판하긴 어려운 상황. 박영현이 스스로 이닝을 마무리 짓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8회에 150㎞대 공을 뿌리던 박영현, 9회엔 다소 힘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떨어진 구속을 메운 것은 나이답지 않은 완급 조절이었다. 박영현은 무사 1, 2루에서 마루야마, 사사가와에 잇달아 2루수 땅볼을 유도하면서 아웃카운트를 모두 채웠다. 마루야마의 타구가 4-6-3으로 연결됐으나 2루 포스아웃 뒤 1루 세이프 되면서 병살에 실패했다. 하지만 사사가와를 상대로 2루 땅볼을 유도하면서 기어이 더블 플레이를 성공시켰다.
박영현의 이번 대회 성적은 3경기 4⅓이닝 2안타 무4사구 6탈삼진 무실점, 평균자책점 0. 일본전을 통해 강력한 구위와 멀티 이닝 소화, 완급조절까지 완벽한 모습을 선보였다. 가을야구 채비에 바쁜 KT가 미소를 지을 만한 모습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