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파리생제르맹(PSG) 이강인(25)이 두 시즌 연속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8강 무대를 밟게 됐다. 영광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팀이 올 여름 이강인을 방출대상으로 지목한 이후 팀내 비중이 확 줄어버렸기 때문이다. UCL 16강에서도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PSG와의 결별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강인은 12일 오전 5시(이하 한국시각) 영국 리버풀의 안필드에서 열린 2024~2025시즌 UCL 16강 2차전에서도 선발 출전하지 못한 채 경기 막판까지 벤치를 지켰다. 그나마 아예 출전하지 못했던 지난 1차전과 달리 이번에는 짧게나마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었다.
진나 1차전에서 0-1로 졌던 PSG는 이날 경기에서는 전반 16분에 터진 우스만 뎀벨레의 결승골을 잘 지키며 1-0 승리를 만들었다. 합산 스코어 1-1이 되면서 연장 승부가 펼쳐졌다. 여기서 이강인이 투입됐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연장 전반 11분에 주전 공격수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를 빼고 이강인을 넣었다.
이강인은 결국 UCL 16강 2차전에서 총 19분의 출전시간을 기록할 수 있었다. 아예 출전하지 못한 것보다는 나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강인의 팀내 비중이 올라갔다고 보긴 어렵다. 연장승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주전 선수 흐비차의 체력이 고갈되자 벤치에 남아있는 가용 인원 중 하나인 이강인을 꺼내 들었을 뿐이다.
만약 엔리케 감독이 이강인의 전술적인 비중을 좀 더 높이 평가했다면 후반전 도중 또는 연장 시작과 함께 투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연장 전반(15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이강인을 호출했다는 건 그냥 평범한 벤치멤버 중 한명을 소환한 것이나 다름없다. 선수가 제대로 기량을 펼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강인도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만약 이강인이 이렇게라도 얻은 찬스 때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면 향후 출전 비중이 좀 늘어날 가능성도 기대해볼 만 했다. 하지만 이강인의 활약은 미미했다.
축구통계업체 소파스코어에 따르면 이강인은 UCL 16강 2차전에서 19분을 소화하며 16번의 볼터치, 패스정확도 92%(13회 시도 12회 성공), 유효슈팅 2회를 기록했다.
유효슈팅 2회에 의미를 둘 수도 있겠지만, 냉정히 볼 때는 경기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제로 소파스코어는 이강인에게 평점 6.9를 매겼다. 선발과 교체멤버를 포함해 이강인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선수는 2명 뿐이다. 브래들리 바르콜라(6.6)와 루카스 베랄두(6.8) 뿐이었다.
특히나 이날 오른쪽 윙포워드로 선발 출전한 바르콜라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엔리케 감독은 교체 1옵션으로 후반 22분 이강인이 아닌 데지레 두에를 투입했다. 오른쪽 윙은 이강인의 주 포지션이기도 하다. 그러나 엔리케 감독은 이강인을 선택하지 않았다. 선발 뿐만 아니라 백업 경쟁에서도 밀려났다는 의미다.
이강인이 팀에서 영향력 없는 선수로 취급받고 있다는 증거는 마지막 순간 승부차기에 돌입했을 때 다시 한번 확인된다. 플레이시간이 많지 않아 체력이 충분히 남아 있었음에도 승부차기 키커로 뽑히지 못했다.
120분 풀타임을 뛴 비티냐와 연장 종료직전 교체 투입된 곤살로 하무스가 1, 2번 키커로 나왔다. 3번은 뎀벨레, 4번은 두에였다. 여기서도 이강인은 엔리케 감독의 '퍼스트 픽'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결국 PSG의 승리로 챔피언스리그 8강행이 결정됐지만, 이강인은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게 다시금 입증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8강전에서도 이강인의 모습을 보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기존 주전선수들이 한꺼번에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거나 엔리케 감독이 전술 운용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PSG에서 이강인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이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듯 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