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냉혹한 배신일까, 기막힌 승부수일까.
파리 생제르맹(PSG)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내놓은 새로운 '이강인 활용법'에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윙어 내지 공격형 미드필더 등으로 활약했던 이강인(24)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지난 20일(이하 한국시각) 르아브르전에 이강인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시켜 73분을 뛰게 했고, 23일 낭트전에서도 같은 포지션에 활용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엔리케 감독은 르아브르전에서 드러낸 이강인 활용법에 대해 "그 자리에서 이강인을 다시 볼 수 있다"며 "이강인은 볼을 소유할 때 짧은 시간이든, 긴 시간이든 훌륭한 기술을 해낸다. 수비형 미드필더가 이강인에게 이상적인 위치가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경기할 땐 수비적으로 만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선수들을 편안한 곳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난 그럴 때 선수들의 정신적인 면을 보길 원한다. 그(이강인)가 좋아하지 않는 포지션이라도 많은 것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 시즌 엔리케 감독은 선발-교체로 이강인을 꾸준히 활용해왔다. 하지만 시즌 내내 팀내 입지 불안은 지우지 못한 게 사실. 급기야 올 시즌을 마친 뒤 이강인이 팀을 떠날 수 있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엔리케 감독이 이강인의 주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활용에서 변화를 준 건 다양한 여지를 남기는 부분. 일찌감치 리그 우승이 확정된 상황에서 보여주는 새 시즌 대비, 실험적 운영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팀내 공격진에 더 이상 이강인의 자리가 없음을 시사하는 부분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엔리케 감독이 르아브르전에 이어 낭트전에서도 이강인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쓰겠다는 의미를 곱씹어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엔리케 감독의 이강인 활용법 변경이 손해만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강인의 활용폭은 그만큼 넓어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멀티 플레이'가 무엇보다 강조되는 현대 축구, 그 중심인 허리에서 공격 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활용 가능한 선수의 가치는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팀 우승이 일찌감치 결정된 여유로운 상황에서 이런 변화를 가져갈 수 있다는 건 'PSG 이후'에도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이강인에겐 분명 호재다.
홍명보호에게도 이강인의 변신은 환영할 만하다. 현재 대표팀 내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고 있는 백승호(28·버밍엄시티)와 황인범(29·페예노르트) 외에 이강인이라는 또 다른 무기를 장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이강인이 공격 기량 면에서는 두 선수에 비해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수비까지 장착한다면 중원에서 전천후 롤을 맡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일찌감치 가능성을 확인했기에 더욱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20일 오만과의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7차전에서 백승호가 전반 도중 부상하자 이강인이 교체 투입돼 역할을 대신했고, 황희찬의 선제골을 도왔을 뿐 아니라 공수 양면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도 이런 이강인의 활약에 긍정적인 시각을 드러내며 향후에도 비슷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냉혹한 프로 세계에서 경쟁은 숙명이고, 변신은 살아남는 지혜가 될 수 있다. 이강인의 변신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홍명보호와 한국 축구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