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림프라임창호, 창단 첫 해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
6라운드까지 2승 4패 부진하다 이후 7승 1패로 역전 우승
"10초 피셔 초속기 바둑이지만 빨라지는 시대 흐름 맞춰야"
(서울=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단체전은 개인전보다 훨씬 부담이 큽니다. 내가 지면 팀도 패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선수들이 시즌 내내 잘 뭉치고 잘 단합해서 다 같이 이뤄낸 우승이라 더 뜻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4일 막을 내린 2024-2025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정상에 오른 영림프라임창호 박정상 감독은 통합 우승의 원동력으로 선수들의 단합심을 내세웠다.
박정상 감독은 1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정규리그 6라운드까지 2승 4패로 부진했는데 선수들이 대국이 끝난 뒤 모여 '한번 해 보자'며 남은 대국은 전승해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다고 각오를 다졌는데 현실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번 시즌 바둑리그가 초속기인 '10초 피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선수들이 매 라운드 실전 위주로 훈련한 게 도움이 됐다"고 밝힌 그는 "팀에서 줄곧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많은 지원을 해준 것도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프로 9단인 박정상 감독은 2006년 당시 메이저 세계기전인 후지쓰배에서 우승한 정상급 프로기사 출신으로 국가대표 코치를 거쳐 바둑TV 해설자로도 활약하는 등 바둑계 '마당발'로 불린다.
그런 박 감독에게 신생팀 영림프라임창호를 창단 첫해에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을 이끈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박정상 감독과 일문일답.
-- 며칠 지났지만, 바둑리그에서 통합 우승을 차지한 소감은.
▲ 우승 직후 방송 인터뷰 때 얘기했지만, 저희 팀은 누구 한 명이 특출나게 잘해서 우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즌 내내 선수들이 잘 뭉치고 잘 단합해서 다 같이 이뤄낸 우승이라 더 뜻깊다고 생각한다.
-- 올 시즌 창단한 신생팀이 통합 우승을 차지했는데.
▲ 과거 2004년 한게임과 2006년 킥스가 창단 첫 해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는데 당시는 선수 보호 지명이 지금과 달라서 신생팀이 크게 불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 시스템에서 신생팀이 통합우승을 차지한 것은 처음이다.
-- 정규리그 6라운드까지 2승 4패로 부진했는데 7라운드부터 14라운드까지 7승 1패로 무서운 뒷심을 발휘해 정규리그 1위로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다. 계기가 있었나.
▲ 경기가 끝나면 늦은 시간에도 야식을 함께 하면서 대국을 복기했는데 6라운드가 끝난 뒤 선수들이 '한번 해 보자'며 남은 판은 전승해서 무조건 정규리그 1위 한다고 다짐했다. 이후 한번 패하긴 했지만, 포스트시즌까지 9승 1패를 했는데 꺾일만한 시점에서 똘똘 뭉쳤던 게 큰 힘이 된 것 같다.
-- 바둑은 두뇌 스포츠라고 하는데 이런 각오나 의지가 승부에 영향을 미치는가.
▲ 단체전에서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가 몇 개 있다. 저도 해봤지만, 선수들이 개인전보다 단체전에 부담을 훨씬 많이 느낀다. 아무래도 패한다면 혼자 지는 게 아니라 팀이 지기 때문이다.
우리 팀은 매 라운드 모여서 훈련을 진행했는데 개인 스케줄을 빼는 면이라든가 팀을 우선시하는 면이 중요했던 것 같다.
-- 그럼 팀 훈련은 어떤 식으로 진행했는가.
▲ 제가 국가대표 코치를 6년 동안 했는데 그때와는 달랐다.
일단 바둑리그에 파격적인 '10초 피셔'가 처음 도입됐는데 무조건 적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수들이 모이면 최소 한 두판 이상 바둑리그와 같은 룰로 대국하는 등 90% 이상 실전 위주로 훈련했다.
--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해 기다리면서 4위였던 마한의 심장 영암이 올라 올 것으로 생각했나.
▲ 솔직히 생각 못 했다. 2위인 원익이 시즌 초부터 모든 전문가가 꼽은 우승 후보였다. 그런데 영암이 2연승 해야 이길 수 있는 3위 수려한 합천과 원익마저 이기고 올라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준비는 당연히 하고 있었고 이 팀이 올라오면 이렇게 운영해야겠다고 그려 놓고 있었다.
-- 챔피언결정전 출전 오더는 어떻게 준비했나.
▲ 나는 선수들의 상대 전적을 상당히 중시한다. 우리 팀 (1지명인) 강동윤 선수가 영암 1지명 안성준 선수에게는 굉장히 강한데 설현준 선수에게는 별로 안 좋았다. 이런 면을 신경 쓰고 오더를 짰는데 1차전 1국에서는 오히려 허를 찔렸다. (상대가 당연히 1지명 대결을 피할 줄 알고) 박민규를 내보냈는데 영암에서 안성준이 나왔다. 박민규는 그동안 안성준과 상대 전적에서 1승 10패로 매우 안 좋았기 때문에 오더 싸움에서 실패했다.
하지만 박민규가 예상 밖으로 안성준에게 승리하면서 우리 팀이 이기는데 큰 원동력이 된 것 같다.
-- 챔피언결정전 1, 2차전을 모두 3-0으로 승리해 최초로 퍼펙트 우승을 차지했다. 기대했는가.
▲ 사실 (2위) 원익이 영암보다 훨씬 강한 전력이라고 다들 평가했지만 영암도 용병인 쉬하오훙이 강력해서 만만치 않은 승부가 될 것으로 봤다. 퍼펙트 우승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 특출한 선수 없이 우승했다고 했는데 주장인 강동윤 선수가 정규리그에서 11승 3패로 다승 1위에 오르는 등 활약했다. 강동윤은 최근 랭킹 3위에 복귀하는 등 삼십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역주행하고 있는데 비결이 무엇인가.
▲ 강동윤은 한 3년 전부터인가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것 같더라. 승부에 약간이라도 해가 되는 것은 아예 하지 않고 바둑이 점점 속기화하는 추세에 맞춰 인터넷 대국도 많이 했다. 그런 자기 관리가 다시 전성기를 만드는 것 같다.
-- 최근 국내 바둑계는 강동윤뿐만 아니라 이지현과 원성진 등 노장들이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도 선수 생명이 길어지는 추세인데 인공지능(AI)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예전에는 선수들이 모여서 연구하는 게 최고의 공부였는데 나이 들고 가정이 생기면 이런 훈련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혼자서도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게 선수 생명이 길어진 배경일 것이다.
-- 이번 바둑리그에서 처음 도입된 '10초 피셔' 방식에 찬반 여론이 있는데 선수들과 감독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 주변 의견은 대체로 반반인 것 같은데 반대하는 쪽은 10초 바둑은 내용이나 질적인 면에서 저하된다고 한다. 반면 최근 영화나 드라마도 짧게 요약된 영상을 보는 등 트렌드가 점점 빨라지는 추세여서 시대 흐름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일 년에 14판을 초속기로 둔다고 해서 세계대회 경쟁력이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10초 바둑을 두면서 황급히 시계를 누른다든지 대국이 엄청나게 빡빡하게 진행된다는 점이 선배로서 안타깝게 보이는 면도 있다.
-- 시즌 동안 팀의 지원이나 통합우승 이후 반응은 어땠나.
▲ 팀에서 시즌 내내 지원하고 관심을 기울여 준 부분에 매우 감사드린다. 우승 당시에는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황복현 회장님께서 바로 연락해 축하해 주셨다. 그다음 날 회장님이 선수단을 초청해서 회식했는데 송지훈 선수가 방송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우승 트로피를 가져가서 회장님께 전달하기도 했다.
-- 바둑리그는 매 시즌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하는데 궁극적인 개선 방안을 제안한다면.
▲ 사실 바둑리그뿐만 아니라 여자리그도 점점 인기가 떨어지는 추세인데 다른 종목을 좀 마케팅하면 좋겠다.
최근 프로당구가 뜨고 있는데 PBA 단체전을 보면 남녀가 한 팀을 이뤄서 경기한다.
우리도 당구처럼 바둑리그와 여자리그를 통합해서 리그를 운영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 않을까 한다. 특히 혼성 페어 바둑은 평소 연습이나 전략에 따라 승부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훨씬 관심을 끌 수 있다.
물론 스폰서 등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한 번 검토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shoeless@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