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통일벼는 한국의 쌀 자급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품종이다.
통일벼가 1970년대 전국적으로 보급되면서 쌀 생산량이 대폭 늘었고 우리나라는 보릿고개로 표현됐던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만 통일벼는 밥맛이 떨어졌다.
맛이 좋고 생산량도 많은 벼 품종이 개발되면서 통일벼는 1990년대 우리나라 논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추억으로 남은 통일벼가 식량난이 심각한 아프리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 정부가 아프리카를 도와주는 'K-라이스 벨트' 사업을 통해서다.
이 사업은 아프리카에 한국이 개발한 벼 품종을 보급하고 농업 기술 전수, 기반 시설 구축 등을 통해 쌀 생산성 향상을 지원하는 공적개발원조(ODA) 프로젝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벼 종자 생산단지 구축 및 종자 보급을 맡고 농촌진흥청은 종자 생산 및 관리, 생산자 교육을 담당한다.
전문가들이 아프리카에 파견돼 농민들에게 벼 재배 이론, 농기계 사용법 등을 교육하는 데 현지 반응이 좋다.
한국 농업 기술이 녹아든 일부 벼 품종은 감비아 등에서 향이 나는 쌀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2023년 시범사업으로 기니, 우간다, 가나, 감비아, 카메룬, 세네갈 등 아프리카 6개국에서 통일벼를 개량한 벼 종자가 2천여t(톤) 수확됐다.
현재 참여국은 케냐를 포함해 7개국이다.
기니비사우, 코트디부아르, 시에라리온 등이 K라이스벨트 사업을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어 그 규모가 확대될 예정이다.
통일벼는 냉해에 약한 품종이다.
그러나 따뜻한 아프리카는 냉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2∼3모작도 가능한 만큼 통일벼 재배에 적합하다.
농식품부는 2027년부터 벼 종자를 연간 1만t 생산해 아프리카 대륙 3천만 명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한국형 쌀 생산벨트'로도 불리는 K-라이스벨트 사업은 아프리카 식량 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단순히 식량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국가들이 스스로 식량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내 많은 국가가 기후 변화에 따른 극한 가뭄, 홍수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식량 자급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권재한 농촌진흥청장은 지난 3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K-라이스벨트 사업에 대해 "아프리카 기아 해소에 상당 부분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K-라이스벨트 사업을 가리켜 "쌀로 잇는 따뜻한 우정"이라고 표현한다.
한국도 6·25전쟁 후 극심한 가난을 겪을 때 국제사회로부터 식량 지원을 받았다.
비슷한 아픔을 기억하기에 아프리카로 내민 손이 더욱 진심으로 통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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