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롯데 새 외인 알렉 감보아가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데뷔전에서 삼성 발야구에 혼이 쏙 빠졌다.
감보아는 27일 대구 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전에 선발 등판, 4⅓이닝 5안타 4사구 3개로 4실점 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평균 151~2㎞의 빠른 공을 던지는 좌완투수의 KBO 무대 첫 등판.
하지만 경기 전 삼성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홈런 뿐 아니라 빠른 발로도 상대를 흔드는 팀. 지난 21일 퓨처스리그 삼성전에 시험 등판한 감보아의 투구동작을 일찌감치 현미경 분석했다.
삼성 박진만 감독은 이날 경기 전 감보아에 대해 "구위가 좋다는 보고를 들었다. 우리가 내부적으로 판단했을 때 또 약점이 있기 때문에 그런 약점을 좀 파고들려고 한다. 젊은 선수들이 좀 많이 좀 뛰게 하려고 그렇게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감보아로선 첫 등판 장소나 상대가 까다로울 수 밖에 없었다. 홈런 1위 군단을 상대로 가장 타자친화적인 라이온즈파크.
장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팍을 가득메운 삼성 팬들의 함성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
모든 것이 낯선 KBO리그 데뷔전. 상대는 철저히 약점을 분석해 나왔다. 0-0이던 2회에 바로 삼성의 발야구가 본격 가동됐다.
상황은 0-0이던 2회말 삼성 공격에서 나왔다. 삼성이 강민호 박승규의 안타와 이성규의 사구로 2사 만루 찬스를 잡았다.
김지찬이 투수 앞 느린 내야땅볼을 쳤다. 수비를 곧잘 하는 감보아도 김지찬의 모터 달린 발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내야안타로 첫 실점. 송구를 1루수가 뒤로 짧게 빠뜨렸고, 2루에 송구하는 사이에 3루주자 박승규가 기습적으로 홈을 파고 들어 2-0. 이종욱 3루코치의 순간 판단이 돋보였다. 이재현이 8구 승부 끝 볼넷으로 다시 2사 만루. 3번 김성윤 타석. 2B2S에서 롯데 선발 감보아가 세트포지션에서 허리를 90도로 접고 한참 머물러 있는 독특한 투구 루틴을 하는 사이 3루주자 이성규가 전광석화 처럼 홈으로 대시했다. 라팍 관중의 뜨거운 함성 속에 감보아는 이성규가 홈에 슬라이딩 할 때까지 공조차 던지지 못했다.
뒤늦게 2루에서 3루로 뛰는 김지찬을 잡기 위해 송구했지만 세이프. 그 사이에 1루주자 이재현도 2루를 훔쳤다. KBO리그 역대 9번째 트리플 도루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직전 기록은 지난해 9월8일 잠실 한화전에서 LG 문보경 오지환 구본혁이 합작한 바 있다. 투구 전 세트 모션 단계에서 취하는 감보아의 특이한 루틴을 캐치한 강민호의 눈썰미 넘치는 제안과 이종욱 3루코치의 결단 속 이성규의 과감한 홈대시가 만들어낸 희귀기록.
3-0으로 앞선 삼성은 김성윤 타석에서 폭투가 튀는 사이 김지찬이 빠르게 홈을 밟아 4-0을 만들었다. 2사 만루에서 단 1안타로 4득점. 감보아의 투구폼 약점을 현미경 분석으로 파고든 삼성 발야구가 만들어낸 장면이었다. 결국 삼성은 선발 후라도의 역투 속에 이 선취점을 지키며 7대3으로 승리했다.
감보아는 5회 2사 1,2루에서 김강현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최고 155㎞의 패스트볼은 명불허전이었다. 키는 크지 않지만 타점도 높고, 익스텐션도 길었다. 최고 145㎞의 고속 슬라이더와 커브도 예리했다. 빠른 볼과의 상성도 좋았다. 23타자를 상대로 탈삼진을 무려 9개나 뽑아낼 만큼 구위는 위력적이었다. 문제는 치명적인 투구폼 약점이었다.
뒤로 넘어갈 만큼 큰 키킹에 긴 익스텐션은 주자를 묶기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트리플 스틸을 허용한 몸을 접는 세트포지션 루틴도 있다. 좌타자에게 극강의 모습을 보였지만, 우타자에게 약점을 보인 점도 투구폼에서 보이는 각도 문제일 공산이 크다. 감보아는 이날 5안타 중 4안타를 우타자에게 허용했다. 4사구 3개 중 2개를 우타자에게 내줬다. 반면, 9개의 탈삼진 중 6개를 좌타자로부터 잡아냈다.
극강의 구위와 치명적 약점의 투구폼. 두 얼굴의 감보아가 과연 현미경 야구를 펼치는 KBO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1선발 역할을 기대한다"는 김태형 감독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