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전 10시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안덕초등학교 2층 컴퓨터실.
6학년 학생들이 저마다 책상에 태블릿PC를 켜놓고 앉아 납작하고 넓은 상자에 담긴 다양한 모양의 블록들을 이리저리 붙이며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로봇을 열심히 만들었다.
마이크를 착용한 외부 전문 강사가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도왔다.
학생 예닐곱명은 벌써 교실 뒤쪽 바닥에 모여 앉아 자신들이 만든 로봇끼리 싸움을 붙이며 놀았다.
몇몇 학생은 강사에게 로봇의 모양을 특이하게 만든 이유를 설명하고, 로봇에 어떤 기능을 넣었는지를 자랑하기도 했다.
보통 컴퓨터용 언어로 어떤 작업을 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 로봇에 주입해야만 로봇이 움직이지만 여기서는 거꾸로 블록으로 조립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태블릿PC에 프로그램이 생성되고 실행 버튼을 누르면 로봇이 움직인다.
안덕초 학생들은 인공지능(AI) 블록 교구를 이용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컴퓨터용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작업인 코딩을 배우는 것이다.
안덕초는 제주도교육청이 제주특별법을 근거로 시행하는 15가지 제주형 자율학교 유형 가운데 '디지털학교'로 선정돼 2024년부터 창의적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창의적 교육과정은 '안덕인공지능놀이터'라는 특색과목 수업과 '창의톡톡인공지능'이라는 특색활동으로 구성됐다.
안덕초는 AI 기술 발전에 따른 사회 변화의 특성과 AI의 가치를 이해하고, AI 기반 사회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을 창의적 교육과정의 목적으로 설정했다.
AI에 관한 이해를 토대로 AI의 원리와 기술을 활용하여 문제 상황에 적합한 해결 방법을 탐색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목적도 있다.
특히 AI와 공존하면서 고려해야 할 윤리적 쟁점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AI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갖춰 인공지능 윤리를 실천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출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안덕인공지능놀이터는 정규 교육과정으로, 창의톡톡인공지능은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편성해 각각 연간 34차시씩 운영한다.
안덕AI놀이터 수업은 인공지능의 이해와 인공지능의 원리 활용 영역으로 나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의 이해 영역에서는 1학년 때 생활 속 인공지능 체험을 하고, 6학년이 되면 사람처럼 사고하거나 행동하는 지능형 소프트웨어인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를 배운다.
인공지능의 원리 활용 영역에서 1학년은 컴퓨터가 이해하는 숫자 표현하기를 배우고, 6학년은 알고리즘(순차·조건·선택·반복구조, 입출력, 변수)의 개념을 이해하고 센서를 활용한 블록 기반 코딩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창의톡톡인공지능 시간에는 세간에 잘 알려진 챗GPT를 비롯한 인터넷 기반 AI 서비스와 네이버의 비영리 교육 기관인 커넥트재단이 무료로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창작 플랫폼 '엔트리' 등을 활용해 교육한다.
또 AI 코딩 로봇 '큐브로이드'와 '알버트AI', 아이들과 교감하며 대화하는 인공지능 감성 로봇 '리쿠' 등 다양한 교구를 구입해 학생들이 직접 이용하며 AI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교사들은 지난 1년간의 수업을 바탕으로 교재를 직접 만들어 올해부터 활용하고 있다.
임혜영 연구자율부장은 "학생들이 살아갈 시대는 4차 산업혁명으로 자율주행 기술이 발달하고 인공지능 비서가 일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안덕초 학생들은 사회에 나갔을 때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능력을 잘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안덕초의 이 같은 AI 교육은 지난달 제주에서 열린 제7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교육장관회의 참석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고위급 교육 관계자 31명이 안덕초를 찾아 4학년 AI디지털교과서 수업, 5학년 AI 블록 활용 코딩 수업, 6학년 AI로봇 활용 탐구 수업을 참관하고 나서 호평했다.
현재 안덕초와 한림초, 법환초, 서호초가 디지털학교로서 학교와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서로 다른 이름의 창의적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이들 학교의 1∼6학년 학생은 모두 매년 68차시의 인공지능 관련 교육을 받는다.
일반 초등학교에서는 현재 5∼6학년에 대해서만 실과 시간을 활용해 연간 17차시의 컴퓨터 관련 교육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제주의 디지털학교 학생들은 일반 초등학교 학생보다 최소 4배나 많은 교육을 받는 셈이다.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내년부터 3∼6학년을 대상으로 연간 34차시 교육을 하게 돼 있지만 그마저도 제주의 디지털학교 수업 시수와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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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