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타 당한후 강경론 득세…의회에선 'NPT 탈퇴안' 논의 예정
"보호 못해주는데 왜 NPT에 의존?" "우라늄 농축 계속할 것"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미국으로부터 핵시설을 폭격당한 이란 정권이 핵무기 제조를 결단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압도적 무력에 영토가 연일 유린당하는 데다가 마지막 보루인 핵시설까지 타격받자 궁극의 억제력을 쟁취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강경론이 힘을 얻고 있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에브라힘 레자에이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 대변인은 22일(현지시간)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에 핵확산금지조약(NPT) 조약에 대한 재검토가 의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NPT는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를 제외한 국가들의 핵무기 보유를 금지해 대량살상무기가 무분별하게 퍼지는 사태를 막기 위한 조약이다.
레자에이 대변인은 "대다수 의원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강하게 비판했으며 IAEA와의 협력 혹은 관계 유지를 중단하는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격화하면서 국제사회에서는 이란이 NPT에서 탈퇴하고 공개적으로 핵무기 제조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이날 레자에이 대변인의 발언은 이란 내부에서 이러한 방안이 실제로 검토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가장 중대한 신호라고 뉴스위크는 짚었다.
레자에이 대변인은 지난 13일 이스라엘이 이란 공습을 시작한 이후에도 이란이 NPT를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아미라 사에이드 이라바니 주유엔 이란대사는 이날 유엔 안보리에 제출한 입장에서 NPT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핵확산 방지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비판했다.
이바라니 대사는 이란은 "유엔 헌장과 NPT의 책임감 있는 당사국이자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라고 강조하면서도 이번 미국의 공습 과정에서 "NPT는 정치적인 무기로 이용됐다"고 밝혔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도 이날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NPT는 우리를 보호해줄 수 없는데, 왜 이란처럼 평화로운 핵 에너지를 가지기를 원하는 국가가 NPT에 의존해야 하는가"라고 되물으며 NPT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고 CNN은 전했다.
현재 세계 190여개국 이상이 가입한 NPT에 가입했다가 도중에 탈퇴한 국가는 지금까지 북한이 유일하다.
북한은 2003년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계획하고 있다는 우려를 들어 NPT 탈퇴를 선언했으며 3년 뒤인 2006년 첫 핵실험을 실시했다.
일각에서는 전에 없는 위기에 내몰린 이란 지도부가 정권 유지를 위해 핵무기 제조를 결단해 북한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정보당국은 이란이 자국 핵 프로그램의 중심인 포르도 핵시설을 공격받으면 핵무기 제조를 결단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2003년 파트와(이슬람 율법 해석이 담긴 칙령)를 통해 핵무기 개발을 금지했고 이는 아직도 유효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란은 고농축 우라늄의 순도를 60%까지 끌어올려 무기급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90%에 다가서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 가운데 우라늄 농축 수위를 60%까지 올린 것은 이란이 유일하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이란의 핵무기에 필요한 투발 수단과 부품까지 만들어 핵무기 완성의 문턱에 도달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21일 포르도 핵시설을 포함한 이란 핵시설 3곳에 전면 공습을 감행하면서 이란의 핵무기 개발 욕구는 한층 더 자극 받은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수년간 이란 내부의 강경파 인사들은 이란이 독자적인 핵무기를 개발해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 적대국들의 공격 가능성에 대한 억지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CNN은 이번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으로 이란에서 이러한 핵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으며 이들이 마침내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킬 가능성도 생겼다고 짚었다.
이란 핵 심장부를 노리고 이뤄진 이번 미국의 공습이 이란의 핵 역량에 어느 정도로 타격을 입혔는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공습 직후 미국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밝혔지만, 이란은 핵시설 지상부만 손상됐을 뿐이라고 반박하며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다만 CNN은 이란 핵시설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핵 기술을 보유한 이란 정권이 정치적 의지만 가진다면 농축 시설은 얼마든지 재건할 수 있다고 짚었다.
마지드 타흐트라반치 이란 외무차관은 이날 독일 언론에 "우리는 우라늄 농축을 계속할 것이며, 누구도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이란 국영 언론에 따르면 이란은 미국의 공습 전에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의 핵 시설을 미리 '대피'시켰다고 밝혀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농축 우라늄을 알려지지 않은 기밀 장소에 따로 보관해 두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NYT도 이란이 이번 공격으로 받은 피해를 회복한다면 살아남은 핵 과학자들이 몰래 핵무기 제조에 돌입할 수 있다면서 이란이 '제2의 북한'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 매체는 현재 북한이 60개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보는 정보가 일부 있다며 "이란 역시 더 크고 적대적인 강국들을 견제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감행한 것과 같은 작전을 수행하는 것을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그것(북한과 같은 핵보유)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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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