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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뉴] DJ 김중권, MB 한덕수, 李 송미령…변신과 소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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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민정당 TK 김중권 발탁, 동교동계 반발 속 인사독주
MB, 진보정권 총리 한덕수 중용…尹, 한덕수 다시 발탁
李, 송미령 농림 유임 시끌…宋, 보수 소신 낼지 주목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1997년 12월 26일, 김대중(DJ) 대통령 당선인이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에 5공 인사인 김중권을 임명하자 여권이 발칵 뒤집혔다. 김중권이 누구였던가. 전두환이 집권하자 판사 법복을 벗고 민주정의당에 입당해 3선 국회의원을 하고 노태우 휘하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정통 TK(대구·경북) 보수였다.

DJ는 영호남 화합을 고려한 탕평인사라 강조했으나 정치권에선 김 실장이 지난 92년 대선 직전 노태우의 명을 받고 DJ에게 20억원의 '격려금'을 전달한 것이 인연이 됐다는 관측이 돌았다. 95년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의혹 수사 과정에서 김 실장이 "20억원 이외에 더 준 건 없다"고 '20억+α'의 존재를 끝까지 부인하는 등 충성심을 보인 걸 DJ가 눈여겨봤다는 것이다.
온갖 뒷말 속에 임명된 김 실장은 DJ의 정치적 동지인 권노갑을 인사에서 배제했다. 그러더니 실장 산하에 국정상황실장을 신설해 DJ 비서 출신인 35세의 장성민을 임명하고 둘이 조각 작업을 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DJ의 절대 신뢰가 있었다. DJ는 이종찬 국정원장이 올린 보고서를 물리쳐 김 실장에게 내려보냈다. 김 실장의 위세가 얼마나 막강했던지 DJ의 입이었던 박지원 청와대 공보수석이 "김 실장님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권노갑은 회고록에서 "5공 출신이라는 정체성 문제와 우려가 있었지만, 승복하고 오히려 그를 도와줘야 한다고 당료들에게 말했다"고 적었다. 권노갑은 이후 김 실장 재임 2년 동안 인사에 개입하지 못하다 그가 한광옥으로 교체된 뒤에야 여당 사람들을 공기업에 보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한덕수도 김중권 못지않은 탕평인사의 상징이다. 한덕수는 박정희부터 김영삼(YS)까지 보수정권 내내 출세 가도를 달렸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중용되고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가 됐다. 진보 총리로 출세의 정점을 찍고 은퇴하는 듯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대사로 발탁돼 진보 진영을 들끓게 했다. 한덕수는 박근혜 정부에서 무역협회장을 지냈고 윤석열 정권 들어선 초대 총리로 부름을 받았다.
호남(전주 태생) 출신이어서 탕평인사라는 평가가 뒤따랐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지역 기반인 호남을 의식해 그를 배척하지 못할 것이란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다. 김대중 정부 조각 때 한덕수를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올린 장성민 윤석열 당선인 정무특보가 그를 총리로 천거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한덕수는 비서실장을 마치고 민주당에 돌아간 김중권처럼 진영을 다시 바꾸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막았고 대선 때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하려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능력과 실용주의에 기반한 통합형 인선이라며 송미령 농림부 장관을 유임시켜 정치권이 시끄럽다. 여권 일부에선 송 장관이 민주당과 농민 단체와 척을 진 데다 12·3 비상계엄 국무회의에 참석한 것을 문제 삼고 있는데, 우상호 정무수석이 국회로 달려가 다독이는 상황도 벌어졌다. DJ의 김중권 카드에 속이 뒤집어졌던 당시 여권의 모습과 흡사하다. 송 장관도 김중권처럼 여권의 진영논리에 맞서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이 대통령의 용인술이 시험대에 오르는 모습이다.
jahn@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