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에서 'K'를 떼어버리면 그 인기를 오래 유지하기 어려울 겁니다."
음악 퍼블리싱 기업이자 신인 걸그룹 VVS의 소속사 MZMC의 폴 브라이언 톰슨(38) 대표는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K팝이 해외 시장을 겨냥하는 것을 이해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어 가사 등 한국적 요소"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또 "이를 놓아버린다면 K팝 특유의 가수와 팬 사이의 끈끈한 관계성과 강력한 팬덤 문화도 함께 잃어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K팝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시대, K팝에서 'K'를 떼고 글로벌로 도약하는 것은 대형과 중소를 가리지 않고 가요 기획사의 주요 목표가 됐다.
그런데 '미국인' K팝 작곡가이자 기획사 대표가 'K'로 상징되는 한국적 요소를 분리하면 안 된다고 한 것이다.
톰슨 대표는 "VVS가 지난달 낸 신곡 'D.I.M.M'에서도 한국어 가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며 "우리는 K팝의 'K'를 잘 유지하고 싶었다. 한국적인 색깔이 희석된다면 아쉬울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견으로는 K팝이 미국 시장에서 개별 노래 단위로는 히트할 수 있겠지만 K팝 아티스트가 테일러 스위프트나 아리아나 그란데처럼 부상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방탄소년단(BTS)이나 블랙핑크가 10년(Decade)마다 나오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1987년생인 톰슨 대표는 라이즈의 '러브 119'(LOVE 119), 엑소의 '코코밥'(Ko Ko Bap)·'러브 샷'(LOVE SHOT), 강다니엘의 '파라노이아'(PARANOIA) 등 많은 1위곡을 만든 작곡가 출신이다.
그는 K팝의 경쟁력으로 "잘 만들어진 그룹의 힘이다. 좋은 곡, 좋은 멤버, 좋은 콘셉트가 어우러졌다"며 "미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훌륭한 '개인'(Individual)이 되라고 가르치지만, 한국은 공동체(Community)를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 때문에 서구 음악 시장과 달리 그룹이 발달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어린 시절 음악을 독학한 그는 삶의 전환을 위해 지난 201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서울로 이주했다. 잠시 영어 강사로 일하던 도중 우연한 기회에 JYP엔터테인먼트에 스카우트돼 이듬해부터 K팝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됐다.
톰슨 대표는 "그 당시만 해도 K팝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았지만, 공부하다 보니 알앤비(R&B) 성향이 강한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미국에서 알앤비 음악을 많이 작곡해봤기에, 내가 잘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장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2016년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설립자 겸 전 총괄 프로듀서의 음악 퍼블리싱 기업 '에코 뮤직'(EKKO Music)과 계약해 엑소, 태연, NCT 등 여러 K팝 스타의 히트곡 작업에 참여했다.
NCT U의 '일곱 번째 감각'을 작업할 때 다소 난해한 음악에 걱정하는 내부 의견도 있었지만, 이수만은 이를 밀어붙였다고 했다. 이수만은 당시 "크게 도전하면 살짝 뒤로 물러설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안전하게만 가면 늘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모험을 독려했다.
톰슨 대표는 "나는 SM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 항상 이수만을 존경했다"며 "창의성도 뛰어나고 사업적으로도 천재적인 인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후 2019년 자신의 활동명을 딴 회사 MZMC로 독립해 후배 작곡가와 음악 프로듀서를 양성했고, 지난 4월 데뷔한 VVS를 통해 아이돌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톰슨 대표는 "작곡으로 성과를 거두고 나서는 그다음 단계로 직접 아티스트를 제작해 보고 싶었다"며 "JYP와 SM에서 곡 작업을 많이 해 본 보이그룹이 아닌 걸그룹에 마음이 갔다. 여성들이 멋진 랩과 알앤비를 부르는 모습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제작자로 변신한 계기를 밝혔다.
VVS는 브리트니, 아일리, 라나, 지우, 리원 다섯 멤버로 구성된 팀으로 힙합과 팝 음악을 결합한 '티'(TEA)로 데뷔했다. '존 윅 4'에 참여한 유명 무술 감독 고지 가와모토와 손잡고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로 승부수를 던졌다.
톰슨 대표는 "멤버들이 가와모토 감독에게 직접 배워 고난도 액션 연기를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며 "연내에 컴백을 한 번 더 하려고 최근 신곡 녹음도 시작했고, 내년 여름에는 음악 축제나 콘서트 무대에 오르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K팝이 세계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10대의 '원석'을 아티스트로 단기간 육성하는 트레이닝 시스템도 주목받았다. 일각에서는 이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 평가하지만, 한편으로는 청소년에게 지나치게 혹독하다는 비판도 병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톰슨 대표는 이에 대한 생각을 묻자 "스포츠든 K팝이든 어느 분야에서나 최고의 스타가 되려면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치는 게 당연하다"며 "그래야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이러한 편견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VVS도 데뷔 전 오랜 기간에 걸쳐 음악과 퍼포먼스 기량을 위한 트레이닝을 했다. 마이크 없이 라이브를 연습해 기술의 도움 없이 기량을 쌓도록 했다"며 "아티스트로서 음악적 이해도를 높이고자 전 세계 다양한 장르의 음악도 듣게 했다"고 말했다.
tsl@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