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드라이브에 우려·반발…입장문서 "시한·결론 정해놓고 추진하면 부작용"
'실세 장관'에 총장 존재감 약화…9개월 재임 의혹·외풍에 비상계엄으로 입지 흔들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심우정 검찰총장(54·사법연수원 26기)이 1일 임기 9개월여 만에 전격 사의를 표명한 것은 이재명 정부로의 정권 교체 후 검찰 개혁 작업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안팎의 여러 상황을 두루 고려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검찰 수장이 '직'을 걸고 마지막 목소리를 낸 것이면서도 검찰 앞에 몰아닥친 거대한 파도 앞에서 입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전임 정부 총장의 한계 또한 드러낸 복잡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심 총장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여러 의혹 제기 등의 외풍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수사·기소 분리를 골격으로 한 검찰권 분산을 공약으로 내건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고 이러한 검찰 개혁을 이끌 지휘 라인이 확정되자 거취를 정리할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임기를 1년 3개월이 남겨둔 심 총장의 조기 퇴진 배경에는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에 대한 반발 성격이 깔려있다.
이러한 심경은 이날 내놓은 사직 입장문에서도 엿보인다.
심 총장은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지금 직을 내려놓는 게 제 마지막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면서 단도직입적으로 검찰개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형사사법제도는 국민 전체의 생명, 신체, 재산 등 기본권과 직결된 문제"라며 "시한과 결론을 정해놓고 추진될 경우 예상치 못한 많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무계 전문가 등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듣고 심도 깊은 논의를 거쳐 국민을 위한 형사사법제도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5문장으로 된 길지 않은 입장문의 절반 이상을 검찰 개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데 할애했다.
과거 법원까지 포함한 사법제도, 검찰을 중심으로 한 형사사법제도 개혁의 경우 별도의 위원회를 꾸려 당사자를 포함해 각계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전례들이 많다. 그러나 새 정부의 형사사법 개혁, 특히 방점이 찍힌 검찰 개혁은 정부와 여당의 주도로 강력하게 추진되는 모양새다.
심 총장은 전날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 총장은 당초 대선 이후부터 주변 가까운 인사들에게 민정수석에 이어 법무부 차관까지 임명되면 자리를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의 표명 시점은 이 대통령과 38년째 인연을 이어온 친명(친이재명)계 '좌장'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하루 뒤이며 이진수 법무차관이 취임한 당일이다. 당초 말했던 대로 실행에 옮긴 셈이다.
특히 역대 가장 강력한 법무장관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는 '실세' 정성호 장관 후보자가 지명된 것도 심 총장의 결심을 더욱 굳힌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인 정 후보자는 당내에서 온건파로 분류되며 합리적 스타일의 소유자로 평가되지만 검찰개혁에 대한 소신은 확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후보자는 전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소청, 공소청, 중대범죄수사청 등 여러 가지 법안이 나오는데 검찰청이란 이름을 그대로 가져가기 쉽지 않지 않겠느냐"며 개혁의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통상 과거 사법개혁의 경우 법무부 장관과 함께 검찰 수장인 검찰총장도 손발을 맞추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번의 경우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입장은 서로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구나 장관이 대표적인 '실세' 장관으로 통한다는 점에서 총장으로서는 사실상의 발언권을 기대하기도 힘든 형국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남은 재임 기간도 평탄치 않은 길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한편 심 총장은 짧은 재직 기간 끊임없는 외풍에 시달렸다. 검찰 내 대표적인 기획통으로 법무부 검찰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는 등 연수원 26기 검찰 '1번'이었던 그는 줄곧 선두주자로 탄탄대로를 달렸지만 총장이 되면서는 순탄치 않은 일의 연속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비롯해 정치적으로 폭발력을 지닌 사건이 산적한 시기에 총장직을 맡게 되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 것도 사실이다.
취임 석 달 만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가 터진 것도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그에 따른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파면 등 일련의 사태는 결과적으로 임기를 단축하는 요인이 됐다.
지난 3월엔 법원의 윤 전 대통령 구속취소에 즉시항고하지 않고 석방을 지휘하면서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심 총장은 당시 야권의 거센 사퇴 압박에 "적법절차에 따른 것"이라며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후에도 딸 외교부 특혜 채용 의혹, 김주현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과의 비화폰 통화 의혹 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며 입지는 계속 흔들렸다.
조직 안팎의 우환 속에 심 총장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두문불출하는 일이 잦아졌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무혐의 처리한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서울고검에서 재수사하도록 지휘하며 난국을 타개하려는 의지를 보였지만 수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취임 후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이 이어지고 여러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수사 동력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총장으로서 의미 있는 수사를 하고 싶었겠으나 상황이 받쳐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심 총장의 퇴임식은 오는 2일 대검찰청에서 비공개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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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