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너무 벅찼어요."
1차지명의 영광, 아무에게나 돌아가지 않는다. 아마추어 시절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았던 선수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게 1차지명 타이틀이다.
그렇다고 그 선수들이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높은 성공 확률과 기대감 속에 출발하는 것일 뿐.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그건 1차지명 선수든, 10라운드 막차를 탄 선수들이든 모두 똑같다. 최근 KIA 타이거즈의 10라운드 신화 투수 성영탁을 보면, 성적은 지명 순이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된다.
키움 히어로즈 박주성은 2019년 경기고를 졸업하고 키움의 전신인 넥센의 1차지명을 받은 유망주였다. 140km 중후반대 빠른공이 묵직했고, 어린 선수임에도 승부사 기질이 있었다.
하지만 프로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신인 시즌 4경기, 이듬해 3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2021 시즌은 13경기 18⅓이닝을 소화했지만 성적은 1패 뿐. 2022 시즌 우여곡절 끝에 프로 첫 승을 따냈다. 하지만 구원승이었다. 늘 마음 속에 꿈꾸던 선발승은 기대할 수 없었다. 선발 기회가 없었다.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올시즌을 앞두고 선발로 준비를 했다. 하지만 스프링캠프에서의 페이스가 좋지 않았다. 선발 경쟁에서 탈락했다. 또 불펜으로 힘겹게 기회를 얻고 있었다.
그러다 기회가 왔다. 5월24일 KT 위즈전에서 4이닝 2실점으로 버텼다. 이후 2군에 갔는데, 홍원기 감독이 이 모습을 잊지 않았다. 지난달 19일 SSG 랜더스전 첫 선발 기회를 얻었다. 데뷔 후 처음이었다. 1군에 오면 불펜이었지만, 2군에서는 꾸준히 선발 경기를 했다. 상무에서도 선발로 단련을 했다.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승리를 따내지는 못했지만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그리고 1일 KT전에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 기회를 제대로 부여잡았다. 6이닝 2실점. 감격의 첫 선발승이었다. 6이닝 투구도, 퀄리티스타트도 처음이었다. 키움 동료들은 짜릿한 첫 선발승을 딴 박주성에게 시원한 물세례를 선물했다.
박주성은 경기 후 "너무 후련하다. 그저 좋다. 물론 조금 춥기도 하다"며 웃었다. 박주성은 이어 "승리보다 선발로 나설 수 있다는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코치님들의 조언에 결과가 따라온 것 같다. 2군에서, 상무에서 선발로 열심히 준비한게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계기였다. 6회 투구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벅찼다. 믿기지 않았다"고 밝혔다.
홍 감독은 이날 박주성의 투구를 보고 향후 선발 로테이션 합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승리를 했는데, 뺄 이유는 없다. 알칸타라-하영민-웰스-정현우에 박주성이 5선발로 잘해주면 키움도 후반기 대반전을 꿈꿀 수 있다. 박주성은 "이제 두 경기 한 걸로 섣부르게 얘기하기는 이르다. 그래도 계속 좋은 경기를 하면, 나만의 것이 생길 것이다. 꾸준하게, 최소 실점을 하는 그런 투수가 되고 싶다. 선발로 계속 나갔으면 좋겠다"고 수줍게 얘기했다.
박주성의 이날 2실점은 안현민에게 연타석 홈런을 맞은 거였다. 최근 모두가 피하는 강타자. 하지만 박주성은 씩씩하게 승부했다. 그는 "피한다고 결과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나는 붙어야 투구수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다 똑같은 타자라고 생각하고 던졌다. 물론, 점수차가 타이트했다면 조금 피하는 투구를 했을 것 같기도 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입단 후 6년이 넘는 시간 만에 얻은 첫 결실. 박주성은 "지금까지 잘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컸다. 앞으로는 자신감 있게 야구를 하고,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올시즌은 부상 없이 경기에 나가는게 가장 큰 목표"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수원=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